10개월 만에 한대수(57)를 만났다. 그 동안 그는 비틀즈와 밥 딜런에 대해 쓴 책 한 권과 두 장짜리 라이브 앨범을 출시했다. 솔로앨범 ‘상처’가 나온 게 지난 해 봄이었으니 회갑이 다 된 나이가 무색하게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30년 넘게 음악활동을 하면서 쌓아놓은 이름값이 어느덧 그의 음악적 기반이 되었다고 해도 틀리지는 않다.
그는 여전히 ‘화폐’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와 대화하다 보면 어느덧 얘기의 중심에 ‘화폐’가 놓인다. 그런데 그 ‘화폐’는 실재하지 않는 하나의 강박관념에 가깝다. 그나 나나 ‘화폐’가 없기는 매한가지다. 그는 내가 사는 원룸보다 아주 조금 더 넓은 신촌의 한 원룸에서 러시아인 부인과 산다(솔로인 나보다 그가 조금 더 못사는 건지도 모른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멋대로 변용하자면 한대수는 그 ‘보이지 않는 손’ 탓에 그 ‘무시무시’한 집안내력과 호방한 코스모폴리타니즘이 무색할 정도로, 의기소침한 소년으로 변해버린다. 난 그걸 ‘귀엽다’는 한 마디로 그에 대한 나만의 이미지를 강탈한다. 그를 처음 만난 2001년 가을 이후 그는 내게 여전히 귀엽기만 한 어른이다.
그가 이번에 쓴 ‘영원한 록의 신화 Beatles 살아있는 포크의 전설 Bob Dylan’(숨비소리 발행)을 읽다가 이런 구절이 눈에 띄었다. "이미 이미지의 위력을 알고 또 체험했던 밥 딜런은 자신의 또 다른 자아 ‘밥 딜런’을 홍보하는 전략으로 오만함과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 전략은 명확하고 또 효과적이었다. 매니저 그로스맨 또한 이 전략을 제대로 이용할 줄 아는 적절한 파트너였다." 책은 비틀즈와 밥 딜런의 일대기를 ‘한대수 식’으로 정리하며 논평하는 내용을 담고있다. 그러니 기왕 나온 비틀즈나 밥 딜런에 대한 책들에 비한다면 알려지지 않은 야사나 한대수 개인의 평가가 지배적이다. 비틀즈와 밥 딜런을 통해 한대수를 알 수도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그런데 사진 캡션으로 부기된 위의 글이 유독 시선을 끌어당긴 이유는 뭘까.
한대수는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박정희를 존경한다’는 발언을 했다가 네티즌들의 집중공격을 받고 있는 참이었다. 한대수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가보면 상황의 전모를 알 수 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우리나라를 이만큼 먹고 살게 해준 게 박정희 덕’이라는 게 한대수의 요지다. 한대수는 박정희 시대를 일본의 메이지유신에 비교하며 덩샤오핑이 마오쩌둥에 대해 평띵가한 말을 인용한다. "마오쩌둥의 정책은 70%는 잘못이지만, 30%는 잘했습니다. 나는 그 30%가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한대수는 광분하는 네티즌들을 향해 ‘여러분, 우리 30년 후에 다시 얘기합시다’ 라며 유보를 둔다. 본의야 어떻든, 최근 불현듯 화두가 돼버린 독재자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옳든 그르든, 이 사태를 통해 한대수는 또다시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자신의 정체성에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낀 듯했다.
이번 사태는 실체와 이미지 사이에서 부대끼는 한 ‘아티스트’의 생존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한다. 밥 딜런의 이미지 전략에 관한 짧은 언급이 시선을 끌었던 건 그런 맥락이다. 한대수는 밥 딜런 만큼의 영악한 이미지 전략이랄 게 따로 없는 사람일 뿐 아니라, 밥 딜런의 그런 측면을 굉장히 못마땅해 한다. 행간에서 암중모색하는 듯한 지식인들 특유의 밀고 당김의 제스처가 한대수에겐 전무하다. 그래서 그는 늘 상처 받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런데 그 주고받는 상처는 한대수라는 한 개인의 몸과 정신 안에서 끝없이 반복운동하는 모종의 에너지와도 같다. 그는 스스로에게 상처 받고 스스로 위무하며 암울하기 만한 현재를 버팅긴다. 오죽하면 자서전에서 이렇게 썼겠는가. ‘어떻게 나 자신과 영원히 산단 말인가?’
수십 년 동안 한국 포크의 전설적인 존재로 알려진 그이지만, 대한민국에 그의 실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몇 안 된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부터 어린시절 그의 노래를 듣고 감명받은 사람들이 성인이 되고 대외적인 활동을 개시하면서 역사의 언저리에 암매장 돼 있던 한대수를 복권시킨 셈이지만, 그것 역시 상당히 게토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런 점에서 한대수는 소위 ‘한 삐딱’한다는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선 체 게바라와 동급에 놓여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랬던 만큼 한대수의 이번 박정희 발언사태는 1990년대 초반 김지하가 학생운동권을 향해 내뱉었던 ‘죽음의 굿판’ 운운에 버금가는 배신감과 환멸을 던져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맥주잔을 들이켜며 그가 했던 육성 한 마디. "여기저기서 마구 전화가 오더라꼬. 내가 정말 박정희를 그렇게 생각하느냐면서. 그래서 내가 진짜라꼬 그랬더니 이 양반들이 엄청 실망하는기라. 나를 다시 봐야겠다 카믄서. 그래서 내 이랬지. 마, 내도 여러분을 사랑하고 여러분이 나에 대해 쓴 글들에 대해 감사하지만, 우리 자기생각은 분명하게 얘기하고 차이가 있다면 그 자체로 인정하자꼬."
한대수는 어린시절부터 미국식 개인주의와 히피즘의 세례를 강하게 받은 인물이다. 어쩌면 한대수는 처음 기타를 배우던 고교시절의 순수한 마인드를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와 술자리를 갖게 되면 ‘국제깡패’ 조지 부시에 대한 성토가 빠짐없이 나온다. 그럴 때 한대수는 그를 신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던 ‘행복의 나라’나 ‘물 좀 주소’ 등의 노래와 맞물려 이 세상에 몇 남지 않은 평화의 전도사처럼 여겨진다. 그 노래들은 지금의7 오십대와 이십대 사이의 커다란 역사적 굴곡을 종횡으로 오가며 강렬한 동시대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소위 자유와 저항의 송가를 만들어 부르던 그가 오래도록 한국 민중을 목마르게 했던 독재자의 무덤에 찬양의 헌화를 던지다니! 한대수를 한국 저항음악의 위대한 상징으로 추켜세우던 이들에게 이것은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난데없는 청천벽력에 정작 가장 많은 상처를 입은 사람은 한대수 자신이다.
나는 이번 사태에 대해 가치판단을 할 생각이 없다. 우상을 배신할 마음도 없고, 한대수의 입장을 대변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다만 노래 몇 곡을 통해 영웅이 되었다가 몇 마디의 말로 역적이 되어버리는, 한 예술가의 실존방식에 더 강한 흥미와 문제의식을 느낄 뿐이다. 인간의 신념이나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그 신념과 사랑의 대상 역시 언젠가는 용도폐기될 처지에 놓이게 된다. 한대수에게 저항가수라는 이미지를 덮어씌운 건 그가 ‘행복의 나라’ 를 부르며 낯선 고국 땅을 장발로 배회하던 박정희 시대의 암울한 정치적 상황 탓이 크다.
한대수는 격동기의 대한민국에 불시착한 외계인처럼 나타나 시대의 우상이 되었다. 그렇게 정처 없이 들고나면서 30년 넘게 제 멋대로의 노래를 만들어 부르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토로했다. 그의 노래는 솔직하다. 고통을 에두르거나 공허한 사념에 빠지지 않는다. 젖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처럼 직접적이다. 그럼에도 내 생각에 그의 노래는 오랫동안 오독(誤讀) 돼 왔다. 여전히 신곡을 쓰고 앨범을 발표하는 ‘현직가수’의 대표곡을 ‘행복의 나라’와 ‘물 좀 주소’만으로 한정하는게 내겐 미스터리다. ‘상처’나 ‘파라노이아’가 노래하는 섬약한 자의식이나 ‘마지막 꿈’의 횡설수설에 담긴 몽유병자의 환상에 대해선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가. ‘spare part’의 비관주의와 분열증을 가지고 그와 밤새 토론해 볼 생각은 없는가. 정말 이십 대 때의 한대수가 목마르다고 고래고래 소리질렀던 대상이 그의 노래를 금지시킨 문화지수 제로의 군인 출신 독재자였을까.
반(反)영웅을 갈급하던 시대에 본의 아니게 영웅이 됐다가 영웅이 없는 시대라고 당대를 한탄함으로써 역적으로 몰리는 그는 여전히 목마른 아이러니의 화신 같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문제는 그의 생각이 옳고 그름을 떠나, 노래를 노래로 듣지 못하고 피아구분의 금긋기에 열중하는 한국적 문화풍토에 그가 너무 무지했다는 데 있다. 그에게 필요한 건 그를 신화적 인물로 우상화하는 논객보다는 삶 자체의 복잡미묘한 단애들을 섬세하게 보듬어 안는 음악적 동지인지도 모른다. 잠깐만이라도 그의 새 라이브 앨범을 들어보자.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복잡미묘하고 잔걱정 많은 ‘진짜 한대수’에 대해서 리드미컬하게 생각해보자. 그러고 나서도 그가 미덥지 못한 모반자로 여겨진다면 세상만사에 대해 아직도 할 말이 많은 그에게 모진 비판을 가하시라. 당신이 도덕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순결하다면 그의 티 없는 마음이 꿀꺼덕 넘어가 당신의 편이 되어줄지도 모르니까.
마지막으로 내 입장을 얘기하자면 그가 박정희를 존경한다고 해도 그에 대한 환상이 깨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덩달아 박정희를 존경하고픈 마음도 없다. 한대수에 대한 환상도 박정희에 대한 미련도 없다. 내가 오로지 아는 건 한대수의 노래가 여전히 마음을 때리고 그와 아주 가끔 만나 술을 마시는 게 신난다는 것뿐이다. 내게 한대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한대수의 최근작
한대수가 비틀즈와 밥 딜런에 대해 쓴‘영원한 록의 신화 Beatles 살아있는 포크의 전설 Bob Dylan’. 내가 알기2론 비틀즈는 한대수가 아주 좋아하는 밴드고, 밥 딜런은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뮤지션이다. 한대수는 자신이‘한국의 밥 딜런’으로 불리는 것에 별 의견을 내비치지 않는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게 그의 짤막한 변이다. 한대수에 의하면 비틀즈는 Tunesmith(음을 가다듬는 아티스트)고 밥 딜런은 Wordsmith(말을 가다듬는 아티스트)다. 한대수에겐 결정적으로 후자의 재주가 없다.
‘Hahn Dae Soo 2001 Live’(서울음반). 2001년 가을, 올림픽 펜싱 경기장에서 ‘Last Solo Concert’라는 타이틀로 열렸던 공연실황을 두 장의 CD로 담은 음반이다. 단독공연으로서는 30년 만에 처음 열렸는데, 당시 한대수는 8집 앨범 ‘Eternal Sorrow’를 발표하며 "더 이상 창작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그 공언(公言)은 공언(空言)이 되고 만다. 이 공연엔 전인권 강산에 이상은 이정선 등이 게스트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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