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보유 선언에 미국과 우리 정부는 “늘 하던 소리” 라며 놀랄 일이 아니라는 반응부터 보였다. 딱히 그럴 만한 빌미도 없는 데 괜한 트집을 잡아 핵 협상에서 몸값을 올리려는 수작이라는 풀이까지 내놓았다. 여기에 영향 받은 우리의 숱한 전문가와 언론도 대체로 북한의 고질이 도졌다는 식으로 쉽게 진단 내렸다.
두 나라 정부의 말과 움직임이 번다한 것은 대수롭지않다는 공식 평가와는 아귀가 맞지 않는다. 그러나 진단이 그렇다 보니 처방도 구태의연하다. 핵무장은 결코 용인할 수 없기에 북한 스스로 정신 차려야 하고, 한미 공조를 토대로 모든 설득과 압력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핵 문제에는 어떤 반대급부도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을 거듭 확인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북한은 쓸데 없는 분란을 일으켜 국제적 비난과 압박만 자초한 셈이다. 그러나 피해망상 또는 과대망상 소리를 듣는 북한이라고 해서 핵보유 선언의 의미와 파장을 모를 리 없다.
앞뒤 분별없이 스스로 불이익을 짊어질 만큼 어리석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돌출한 듯한 언행의 배경과 동기부터 정확히 헤아리는 게 순서다. 정신과 진단도 환자의 강박의식 등 내면을 살펴야 한다. 하물며 명색이 국가인 북한의 행동을 이유 없는 반항으로 보는 것은 오히려 유치하다.
북한의 핵보유 선언 명분이 불순하다면, 객관적 국제 언론과 전문가들의 진단을 살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의 공영 ARD 방송은 북한이 미국과의 핵 포커에서 손에 쥔 채 값만 올리던 핵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밀었다고 비유했다.
그렇게 아끼던 핵 카드를 써버린 것은 6자 회담 틀에서 미국과 협상을 계속해봐야 얻을 게 없다고 판단한 때문이고, 이를 통해 핵 계획 포기를 다투던 미국과의 대치를 핵무기 폐기를 논란할 국면으로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이런 북한의 판단이나 객관적 진단이 허황된 것은 아니다. 미국이 협상을 통한 북핵 해결을 되뇌면서도 실제로는 북한을 자극하고 압박하는 이중적 정책을 취한 사실은 미국 쪽 전문가들도 지적한다.
북한이 무엇보다 체제보장을 요구하는 마당에 미국은 ‘악의 축’ 규정에 이어 ‘폭정 종식’ 을 천명, 핵 위협에 바탕한 압박 명분을 체제의 도덕성 차원으로 확대했다. 북한 인권법 시행이 단적인 예다.
미국의 강경세력은 이라크와 같은 체제전복(Regime change) 까지 수시로 들먹였다. 이에 우려를 제기하면 미국 정부는 체제변혁(Regime transformation)을 추진할 뿐이라고 말하지만, 이 것만으로 북한에는 큰 위협이다. 체제변혁 논리는 냉전시대 소련의 독재와 인권상황을 빌미로 이념과 정체성의 변화를 목표 삼은 봉쇄정책의 바탕이다.
북한에 무력을 쓰지는 않지만 오랜 봉쇄를 풀 뜻은 없다고 에둘러 말한 셈이다. 우리는 이를 간과한 채 쉽게 안도했지만, 미국이 북한의 체제변혁을 요구하거나 꾀하는 것은 자살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는 비판이 미국에서도 일찍부터 나왔다.
이런 시각에서는 북한이 손을 털고 일어선 것은 미국이 부시 2기 출범에 즈음해서도 희망적 신호를 주기는커녕 새로운 압박만을 시도한 때문이다. 라이스 국무장관의 폭정종식 논리도 그렇지만, 부시 대통령이 국정 연설에서 북한 문제를 가볍게 언급한 것이 북한을 낙담하게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걸 다행스레 여겼으나 북한에게는 ‘악의적 무시’ 였다는 풀이다. 이어 북한이 우라늄 물질을 수출했다는 근거 모호한 주장을 흘리고 중국에 특사까지 보내 거론하자, 판을 걷기로 작정했으리라는 분석이다. 미국이 적색선(Red line)으로 설정한 핵무기 확산의혹까지 들고나오는 마당에 기대할 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얘기다.
이렇게 보면 북한의 각성만을 촉구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과 거리가 있다. 미국의 북핵 정책이 좌초했다고 비판하는 것은 성급하지만, 미국의 전략적 의도를 도외시한 채 북핵과 북한 문제를 논하는 것은 늘 어리석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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