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만든 제작자, 투자자, 감독 모두 전라도 광주 출신인데, 저희가 왜 전라도 사람들을 싸잡아 욕되게 하면서 지역감정을 조장하겠습니까."
‘전라도 새끼가 깡패밖에 할 게 더 있냐’고 적힌 홍보 포스터로 지역감정 조장 논란에 휩싸인 영화 ‘무등산 타잔, 박흥숙’(3월 개봉예정) 제작사인 백상시네마측은 14일 제작진 고향까지 커밍아웃하듯 고백하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분노는 수그러들 줄 모른다. 이 영화 게시판에는 ‘진짜 영화관 불 한번 나야 되겠냐’ ‘돈벌레 XX들 그렇게 돈 벌고 싶더냐’ ‘말짱한 사람 깡패 만드는 XX들’ 등 날선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영화사는 "주인공 박흥숙이 연좌제로 사법고시에 떨어진 후 내뱉는 자조적인 대사일 뿐"이라는 해명을 올렸지만, 600여 건을 넘는 게시물 가운데 긍정적인 반응은 하나도 없다.
‘무등산 타잔, 박흥숙’은 최근 충격요법을 남발해 온 영화 마케팅의 부작용을 여실히 보여준다. ‘선정적이고, 욕 먹어도 눈길만 끌면 된다’는 방식이 관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예는 비일비재하다. ‘모르는 척, 순진한 척! 여자들도 자we를 할까’ ‘남자들은 누구나 똘똘이(?)를 하는 걸까?’ 등 자극적인 광고문구를 도발적인 포즈의 여주인공 사진과 함께 넣은 포스터를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반려한 ‘몽정기2’가 대표적이다.
‘여선생vs여제자’는 영화의 내용과 무관한 ‘미술선생과 여제자의 원조교제 현장고발’이란 벽보를 거리 곳곳에 붙여, 일부러 문제성 영화인양 포장했다. ‘귀여워’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여주인공 순이 가슴 만지기’라는 선정적인 게임을 올렸다가 네티즌의 비난에 서둘러 내리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애써 막으려 했을 ‘구설수’를 일부러 퍼뜨리는 경우도 있다. 독일영화 ‘미치고 싶을 때’ 개봉 당시 영화사측은 "포르노B 배우 출신인 여주인공 시벨 케킬리의 과거 사진이 인터넷에 나돌고 있다"고 도리어 선전했다.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그때 그사람들’ 역시 법적, 사회적 논란을 결과적으로 홍보에 이용한 셈이다.
이처럼 의도적으로 스캔들에 휘말리도록 하거나(‘노이즈 마케팅’), 부정적인 이미지를 일부러 퍼뜨리는(‘네거티브 마케팅’)식 영화 마케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높다. 한 영화사 관계자는 "주로 제작단계에서 주목을 끌지 못한 영화가 개봉에 임박하자 ‘악 소리 한번 내자’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하지만 지난해 ‘돈텔파파’가 원제 ‘아빠하고 나하고’를 버리고 선정적인 3류영화로 포장을 바꾸면서 지방 극장가를 중심으로 흥행했듯이, 영화 질과 관계없이 ‘한탕’을 노리는 영화사들에게 막가파식 마케팅은 참기 힘든 유혹이다. 문제는 ‘요란한 치장으로 논란이 되고, 눈길만 끌면 된다’는 태도가 영화 전체의 신뢰를 깎아 내린다는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른 영화에 여러번 배신 당하다 보면 관객에게 남는 것은 영화에 대한 불신 뿐이다. 영화홍보사 올댓시네마 채윤희 대표는 "마케팅의 일환으로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은 물론 나쁘지 않지만 ‘일단 잘되고 보자’는 안일한 생각은 관객들을 불편하게 한다. 자승자박인 셈이다"라고 꼬집었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기득권층 겨눈 총탄"/ WP ‘정치공세’ 논란 보도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13일 영화‘그때 그 사람들’개봉을 계기로 한국에서 일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논란을 보도하면서 이 영화(The President’s Last Bang)는 "한국 기득권층의 심장을 겨눈 총탄"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한국인들이 국가엘리트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고 있다’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에서 박 전 대통령의 최후를 소재로 다룬 이 영화가 박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묘사하고 부유한 기득권층의 무절제한 생활 단면을 부각 시킴으로써 이들에 대한 정치적 공세로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한국의 과거사 청산 논란 역시 식민지 해방과 그 이후 정치·경제적 민주화 과정에서 갖는 역사적 의미를 짚기 보다는 일부에서는‘부유한 엘리트’나 ‘상류층’에 대한 정치적 공세로 번져가며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3대에 걸쳐 거대한 부를 축적한 한국의 상류층들은 자신들이 북한에 반대해온 한국사회의 정치·경제 중심 축에 먹칠을 하려는 의도로 기획된‘반 기득권 운동의 희생자’라고 말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한편 정치 전문가들은 이는 한국이 1910년 일본에 합병된 이래 가장 광범위한 과거 역사 재조사 과정에서 겪는 이념논쟁의 일환으로 분석했다고 덧붙였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 기고/ 소재나 표현의 자유가 긍정수준 넘어 自害단계로
극한을 향해 치닫는 한국영화의 ‘자극 경쟁’이 소재나 표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긍정적 수준을 넘어 자해(自害)단계로 바뀌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상업적인 기획의 방패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몇년 사이 한국영화는 비약적인 발전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일반적인 규범과 가치를 뒤집는 ‘폭주’의 과정이기도 했다. 비리 경찰관의 행태를 코믹하게 비틀면서 한국영화의 흥행시대를 열었다고 할만한 ‘투캅스’는 우리사회의 심리적 금기를 넘어서는 계기를 만들었다. ‘생과부 위자료청구소송’이나 ‘넘버 3’ 같은 영화에서는 듣기 민망할 정도의 욕이 들어갔다. ‘나쁜 영화’는 청소년들의 일탈 문제를 다루었지만 욕설과 폭력은 물론, 당시 영화 심의기준으로는 수용할 수 없는 성적표현현을 담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단 금기의 선을 넘기 시작하자 ‘더 강하고 충격적인’ 표현들이 경쟁하듯 등장했다. ‘친구’의 잔혹함, ‘공동경비구역JSA’의 탈 이념적 행동, ‘해피엔드’나 ‘클럽 버터플라이’ ‘결혼은 미친 짓이다’ ‘바람난 가족’ 등에서 보여준 결혼의 의미나 가족의 가치를 해체하는 성 표현들은 한국영화의 ‘변화’를 증명한 사례들이다.
‘제니, 주노’라는 영화는 미성년자인 중학생의 임신과 출산, 육아과정을 다루는 단계까지 갔다. 노인들의 연애 이야기를 다루면서 실제 성행위 장면을 삽입해 논란을 일으켰던 ‘죽어도 좋아'의 반대쪽을 겨냥한 기획이다. 주인공이 미성년자인만큼 논란이 될만한 표현은 적지만, 영화 자체의 완결성보다 부수적 논란을 마케팅에 활용하려는 의도가 더 크게 보인다.
한국영화 흥행을 이끌었던 영화 중에서 지상파 TV에서 아예 방영하지 못하거나, 여러 장면을 재편집하고서야 겨우 볼 수 있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은 한국영화의 건강성이나 상품적 유통성이 불안하다는 반증이다. 자극적 표현이나 논란거리 소재는 단기적으로 흥행요소가 될 수 있으나 자제와 여과가 없는 집착은 목마르다고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국영화가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그 ‘난폭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조희문 상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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