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8년 2월15일 헝가리 왕 지기스문트가 태어났다. 1437년 졸(卒). 중세 유럽의 군주들에겐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지기스문트도 여러 정치공동체의 군주를 겸했다. 19세 때인 1387년 헝가리 왕이 된 그는 42세 때인 1410년부터는 신성로마제국(독일 제1제국) 황제를 겸했고, 51세 때인 1419년부터는 보헤미아 왕을 겸했다. 그러니까 지기스문트는 당대 중부·동부 유럽 대부분을 다스리는 군주였던 셈이다.
지기스문트는 룩셈부르크가(家)가 배출한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다. 그 기원을 10세기 룩셈부르크 지역에 두고 있는 룩셈부르크가는 14세기 들어 독일 여러 지역국가들의 국왕과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을 배출하며 유럽 최고의 명문가가 되었다. 1308년에 즉위한 하인리히7세 이래, 신성로마제국은 카를4세·벤츨·지기스문트 등 주로 룩셈부르크가 사람들을 황제로 뽑으며 14세기와 15세기 초반을 통과했다. 카를4세는 지기스문트의 아버지고, 벤츨은 지기스문트의 형이다. 그 시절 이 집안 사람들은 중동부 유럽 여러 왕가들과 일종의 결혼동맹을 맺으며 이 지역 정치를 쥐락펴락했다. 15세기 중엽 이래 신성로마제국 제위는 합스부르크가로 넘어갔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로서 지기스문트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은 콘스탄츠 공의회(1414~1417)를 주선해 가톨릭교회의 대(大)분열을 봉합한 것이다. 당시 교회는 로마계의 그레고리우스12세, 아비뇽계의 베네딕투스13세, 공의회파의 요한23세 등 제가끔 정통성을 주장하는 세 교황이 정립(鼎立)하는 바람에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지기스문트황제의 제안으로 콘스탄츠에 모인 유럽 각국의 추기경과 주교, 신학자, 세속군주와 제후들은 우여곡절 끝에 기존 교황들을 물러나게 하고 마르티누스5세를 새 교황으로 추대함으로써 수십 년간의 교회분열에 마침표를 찍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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