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월에 대독 터진다는 말이 있다. 딴은, 간간이 부는 천변 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는 하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 들어, 물 속에 잠근 빨래꾼들의 손도 과히들 시립지는 않은 모양이다.’ 1930년대 청계천 풍경과 서민들의 삶을 그린 작가 박태원(1909~1986)의 장편소설 ‘천변풍경’ 에서 흘렀던 청계천의 맑은 물을 보게 될 날도 멀지 않다. 서울에 사람들이 터잡고 살기 이전부터도 물고기들 이 뛰놀았을 천연하천, 사람들이 살고서는 아낙네들의 빨래터요 아이들의 놀이터이C자 생활하수의 통로였던 청계천. 만신창이가 된 채 콘크리트로 뒤덮였던 그 물길이 다시 열리고 있다.
2003년 7월 고가도로 철거가 시작된 후 완공(10월 1일)을 7개월여 앞둔 13일 현재 청계천 복원 공정률은 91%이다. 일제가 복개공사를 한 1937년부터 치면 68년, 1958년 재개된 복개공사부터 따지면 47년만에 청계천은 그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된다.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 후 잠실대교 북단 아래 잠실수중보(자양취수장)에서 한강물을 하루 12만톤씩 퍼올려 뚝도정수장에서 정수한 다음 청계천 시점부까지 보내 방류할 계획이다. 하천 깊이는 평균 40㎝, 2급수의 수질을 유지해 각종 수중생물이 자리잡고 살게 하고 주변은 친수공간과 생태공원으로 꾸밀 구상이다. 지난해까지 양안도로와 하천벽 등을 정비했고, 지금은 물길이 지날 하상과 주변 조경 및 부대시설 공사가 한창이다. 22개 다리 가운데 19개 다리가 다시 세워졌다. 나머지 광통교, 광교, 임시보도교(수표교 자리) 공사도 6월 끝난다.
하상에는 직경 50㎝ 정도의 돌을 평평하게 깔고, 하천 양쪽에는 수백톤 무게의 큰 바위들을 2~3c 높이로 쌓고 있다. 돌을 바닥에 까는 이유는 물이 흐르면서 흙이 휩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지금까지 청계천 복원공사에 반입된 돌만 15톤 트럭 9,000대 분량에 이른다.
시는 5월말까지 대부분의 공사를 마치고 6월부터는 시험방류를 해 여름 장마철과 집중호우 때 개천으로서의 기능을 시험해볼 계획이다. 종로구 서린동~예지동 제1공구 공사를 맡은 대림산업 석재덕 현장소장은 "청계천 복원의 핵심은 물과의 싸움"이라면서 "물이 흐르는 도중에 새지 않게 하고 집중호우를 견딜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사가 진척되면서 청계천을 따라 각종 신축건물이 들어서고 기존 건물도 리모델링되는 등 주변도 활기를 띠고 있다. 삼일교 부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공사 전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는 ‘죽은 거리’였는데 요즘은 찾아오0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면서 "상권도 살아나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에는 단순히 하천을 되살리는 것보다 훨씬 큰 과제가 남아있다. 원제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청계천 복원은 시민들이 새로운 삶, 패러다임의 변화에 적응하는 배움과 실천의 무대가 될 것"이라면서 "그러나 불과 2년 3개월만에 복원하려는 발상은 사실 무모하고 당돌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무, 문화, 위락, 여가, 쇼핑 등의 기능이 적절히 스며든 주변부 개발이 이뤄지지 않으면 썰렁하고 음산한 구석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했다. 공기 단축으로 문화재를 제대로 복원하지 못했고 주변 상인들을 위한 대책도 불완전하며, 청계천에 흘려보낼 한강물 취수와 복원 후 하천 관리에 들어갈 엄청난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계천 복원은 역사도시 서울의 원형을 되찾고, 지치고 병든 땅에 물길과 바람길을 내 자연의 숨소리를 되살리려는 대역사(幢祠事)이다. 양윤재 서울시 부시장은 "청계천 복원은 서울 600년의 묻힌 역사를 회복하는 문화활동이자 미래의 이상을 추구하는 ‘백 투 어 퓨처(Back to a Future)’"라며 "서울의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를 한층 높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고기와 수생식물과 사람이 다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생명의 물길, 메마른 경쟁의 삶에 지친 도시인들이 피로를 씻어버릴 수 있는 해방의 공간, 가족과 연인이 함께 찾아와 쉴 수 있는 도심 속 ‘꿈의 냇물’이 눈앞에 있다. 청계천은 이미 우리 가슴 속에 흐르고 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 日 "청계천은 또 다른 한류"/ '도쿄 日本橋 복원’에 벤치마킹 나서
청계천 복원은 세계적 관심사이기도 하다. 2년 3개월이라는 단기간에 고가도로를 뜯어내고 자연하천을 복원한다는 결단과 실천이 놀랍다며, 도심 개발의 사례로 벤치마킹하는 곳까지 생겨나고 있다.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곳은 일본이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복개해 고속도로를 건설한 도쿄 도심의 니혼바시(日本橋) 복원 작업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요미우리신문은 ‘경관대국 부활의 길’이라는 칼럼에서 "청계천 복원을 TV드라마나 영화 이외의 또 다른 ‘한류’로 주목하자"고 말했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드는 니혼바시 일대 경관 복원에 청계천 복원을 사례로 보고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도 지난해말 1면에 ‘도로 철거, 작은 시내를 되돌린다’는 제목의 청계천 특집기사에서 "경제적 효율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온 나라에서 환경 최우선을 선언했다"며 놀라움을 표했다.
최진환기자
■ 기고/ 유년시절 川邊풍경 눈에 선해
나는 청계천 토박이다. 청계천 4가 할렐루야교회(구 아세아극장) 뒷골목 장사동 148의1번지. 그곳이 우리 집이다. 60여년 전에도 우리 집이고 지금도 우리 집이다. 이 집은 어머니가 젖먹이였던 나를 들쳐업고 밥장사를 하며 아버지와 함께 지으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정말 당신께는 그렇게 꿈같았을 집을 바라보시고는 이내 돌아가셨다. 과로와 영양실조로 병마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개천가의 아이로 자랐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청계국민학교(현 동국제강 본사)였다. 한창 세상 문물에 호기심이 돋아나는 나이라 6년 동안 오르내린 천변 풍경은 지금도 눈 감으면 선하다.
원래 나의 유년기였던 1930년 당시 청계천변은 주택가였다. 반듯하게 지은 집도 있었지만 대부분 목조로 지은 작은 기와집들이었다. 초가집도 있었다. 우리 옆집도 초가집이었는데 나무장사들이 막걸리 한 잔씩 걸치고 가는 목로주점이었다. 청계천변에는 우마차가 다니고 다리 밑에는 거적을 둘러친 거지들의 움막이 있었다. 연이어 걸려있던 다리들은 여름 밤이면 동네 어른들의 피서지가 되었고 가을이면 연날리기가 한창 벌어지는 민속놀이장이었다. 건천이라 개천 바닥에 흐르는 물은 그저 쫄쫄거리고 흐를 정도였다. 그러나 장마철이 되면 개천은 눈 깜짝할 사이에 불어나 붉은 흙탕물이 다리 밑까지 차 올랐다.
사계절의 풍경 못지않게 세태의 변화도 천변의 그림을 바꾸어 놓았다. 해방 후 판잣집과 좌판이 뒤덮더니 5·16이 나자 어느날 일시에 사라졌다. 복개가 되고 고가도로가 그 위에 놓이자 청계천은 완전히 시야에서 없어졌다.
한국전쟁 때는 중학생이었다. 청계천 3가 다리 밑에서 학살당한 떼주검을 본 것은 그때였다. 전쟁의 참상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더 충격을 주었던 것은 1·4후퇴 후 폐허처럼 되어 버린 청계천과 천변 우리 동네와 우리 집이었다. 이름 모를 풀과 나무로 뒤덮여 있었고 우리 집 대청마루에서는 참새들이 놀고 있었다.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 풍경보다 더 극명한 전쟁의 모습이 어디 있을까.
4·19의 도화선이 되었던 고려대생 데모 피습사건이 일어난 곳도 청계천변이었다. 4가에 있던 천일극장 앞이었다. 경찰의 곤봉을 맞고 피투성이가 된 대학생들을 보았다. 그리고 같은 대학생이었던 나는 다음날 광화문에서 데모 행렬에 가담했다.
유년의 기억들은 아름답게 남아있지만 소년기와 청년기의 청계천은 혼돈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시대의 변화와 개발의 낙진 속에서 나는 매몰되고 일그러지는 나의 ‘고향’을 보았다.설마 하는 심정으로 나는 가끔 내가 살던 집을 찾아가 보지만 이젠 흔적도 없다. 분명 내가 주인인데 주인이 집을 알아볼 수가 없다. 길은 찢어지고 집은 뭉개지고 갈라져 ‘자유상가’로 뒤엉켜 있다.
그 청계천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 눈 앞에 나타난다니 개인적 감회는 남다르다. 어쩌면 이것마저도 세상 변화의 한 상징일 듯싶다. 600년 전 치수의 용도는 사라지고 이제 도시의 정원으로 남게 된 것이다. 덮고 쓸어버리고 온갖 구조물 속에 매몰되다가 그 원형이 살아나는 청계천의 의미를 한번씩 생각해봄직하지 않을까.
손광식 언론인·‘내고향 청계천 사람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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