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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성의 정치읽기/ 기업논리가 대세로 盧의 불편한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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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성의 정치읽기/ 기업논리가 대세로 盧의 불편한 속내

입력
2005.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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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자총액제한제도의 완화 흐름을 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은 편치 않은 듯 하다. 출총제가 타당하지만 기업들이 그것 때문에 투자하기가 어렵다고 하니 할 수 없이 완화를 받아들이는 것 같다.

노 대통령이 불편한 속내를 털어놓은 것은 아니지만 청와대 사람들이 전하는 분위기는 그랬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서민 경제만 잘 돌아간다면 물러서겠느냐, 개혁과 명분이 우리의 존재 이유인데"라고 했다.

그 말을 듣다 보니 오랜 속설이 하나 생각났다. "정권 초 기업들이C 숨죽이고 있지만 1, 2년만 투자하지 않으면 결국 정권이 손들게 돼있다"는 것이다. 경기가 가라앉고 서민들이 살기 힘들면, 결국 정권은 재계의 논리를 따르게 된다는 얘기다.

재계가 ‘정권 길들이기’를 의도적으로 하든, 안 하든 간에 역대 정권은 이 속설을 벗어나지 못했다. 초기에는 개혁을 내걸다가 조금만 지나면 재계와 보조를 맞추었고 권위주의 정권들은 아예 정경유착 구조에 매몰됐다.

노무현 정권도 예외가 아니다. 집권 초반의 개혁 기세는 좌파 논란이 불거지면서 주춤거렸고 경기가 바닥을 헤매자 한풀 꺾였다. 그 와중에 재계는 "정권이 기업의 투자 심리를 위축시킨다"는 불만을 쏟아냈다.

실제 거래소 상장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이 100%에 불과할 정도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IMF 직후 800% 웃도는 부채비율을 200~250% 수준으로 낮추려고 정부가 그렇게 애썼는데 지금은 그 밑으로 내려가 있다. 상장기업들의 총 자본금이 270조원에 달하니까 부채비율을 200% 수준까지 높이면 산술적으로는 270조원이 투자될 수 있다. 이 돈만 투자되면 일자리는 엄청나게 생겨날 것이고 경기도 살아날 것이다.

그렇다면 출총제나 집단소송제를 완화하고 기업의 뜻대로 해주면, 투자가 이루어지고 경제가 풀릴까. 그것은 기대일 뿐이다. 기업의 투자가 적었던 것은 출총제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노동시장의 경직성, 생산성과 수익성 문제 등으로 투자 대상을 찾기가 어려운 측면이 더 컸다. 그런데도 대외적으로는 출총제나 집단소송제 때문이라는 논리만 부각됐다.

언제부턴가 기업 논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의무를 강조하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비평마저 나온다. 그러나 과하면 문제가 되는 법.

정권이나 국민이 기업 논리를 따라준다면, 그래서 실용주의가 대세가 된다면, 기업들도 달라져야 한다. 얻을 것은 얻어놓고 투자도 안 하고 분식회계 정리, 일자리를 늘리는 노력도 게을리 한다면, 그 역풍은 오히려 더 거셀 수 있다.

정치부 부장대우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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