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의 날개
로렌스 옙 지음 · 김연수 옮김 · 소년한길
외국을 책과 영화로만 경험하던 때가 있었다. 이광수의 ‘유정’을 읽으며 바이칼 호수에 가고 싶었고, ‘17세의 여름’이라는 하이틴 로맨스에서 미국의 오클라호마 주가 석유산지라는 것을, ‘주홍글자’에서는 세일럼을 알게 되었다.
소설에서 얻는 지식은 그곳의 분위기와 풍경을 상상하게 했고, 나는 희망 여행지에 그곳들을 올렸다. 때로 그 곳의 실제 모습은 나의 기대를 배반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소설 속의 장소가 삶의 현장임을 새삼 깨닫기도 하고, 운 좋으면 세월의 자취를 거꾸로 추적해보는 재미도 만난다.
중국계 미국작가 로렌스 옙은 ‘황금산 연대기’ 시리즈에서 1848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국인들의 이민과 정착과정, 그 자손들의 미국사회로의 동화와 중국인으로서 정체성 찾기를 다룬다. 그 중 1903년부터 1910년까지를 다룬 ‘용의 날개’가 최근에 나왔다. ‘황금산’은 중국인들이 샌프란시스코를 부르던 말로 1849년 골드러시의 중심이 된 도시다. 당시 자연재해로 먹고 살 길이 없던 광동 지역 남자들은 금 채취나 철도부설 노동자로 혼자 이민 가 고향의 가족에게 생활비를 송금하며 살았다.
‘용의 날개’ 주인공 월영(月影)이 아홉 살 되던 해 아버지가 미국으로 초청한다. 처음 만나는 아버지는 오랜 타향생활의 어려움으로 깊은 주름이 팬, 그러나 자기의 전생이 용이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의 꿈은 하늘을 나는 것. 고단한 이민자에게는 불가능해 보인다.
중국인에 대한 차별이 극심하지만, 아버지는 미국인들과 어울려 살고자 안전한 차이나타운을 떠난다. 다행히 이해심 많은 하숙집 주인 미스 휘틀로 집에 거처를 구하고 새로운 생활이 자리를 잡자, 아버지는 동료들의 비웃음과 가난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도 불구하고 비행기 만드는데 전념한다. 월영은 그런 아버지를 도와 설계도를 이해하고 생계를 꾸리느라 힘든 생활을 이어간다. 마침내 시험비행 하는 날, 중국인들도 축하한다.
작가는 1909년 캘리포니아 주에서 20여 분간 비행한 풍조귀라는 중국인에 대한 신문기사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이 단순한 사실에 루즈벨트 대통령, 라이트 형제와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을 등장시켜 구체적인 배경을 만들고 중국 이민사회 묘사를 통해 현실감을 더한다. 그 결과 가족애와 우정이 뒷받침된, 노력하는 삶이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진다.
미국이란 낯선 나라에서 이름없이 살다 자취없이 사라진 중국 이민자의 삶. 그것은 멕시코의 한국이민자일 수도, 코리안드림을 이루려는 외국인 노동자일 수도, 독일의 터키인일 수도 있다. 각각의 특수한 상황에서 공통된 삶의 미덕을 찾는 것, 지구촌이 내 안에서 넓어지는 경험이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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