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에서만 있는 일인 줄 알았는데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있다니…." 이번 설연휴 기간 강원 영월경찰서 휴게실에서 KBS드라마 ‘아내’, 혹은 외국영화 ‘마음의 행로’에서나 있음직했던 애절한 스토리가 그대로 재연돼 지켜보던 경찰들도 함께 울었다.
■ 30代주부 객지서 사고…생명의 은인과 결혼
사연의 주인공은 A(58·여·식당종업원)씨. 제주도에서 남편(65·전직 공무원)과 2남1녀를 두고 평범한 주부의 행복을 느끼며 살던 A씨는 81년 볼 ?0舅? 있어 부산에 왔다가 추락사고를 당했다. A(당시 34세)씨는 사고 직후 우연히 주변을 지나던 B(53·노동·당시 29세)씨에게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사고 후유증으로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던 A씨는 자신을 극진히 간호를 해 준 B씨와 결혼해 아들(20·대학생)을 낳으며 제2의 인생을 살았다. 영월이 고향인 남편 B씨는 당시 부산에서 노동을 하며 지냈으며, A씨를 만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살았다.
■ 아들 軍문제로 호적정리중 前가족 확인·재회
지난해 10월 군 입대를 앞둔 아들 문제로 A씨의 호적정리가 불가피해졌고, B씨의 요청에 따라 영월경찰서는 그동안 무적 상태였던 A씨의 호적을 찾아 나섰다. 지문조회를 통해 3개월여 추적한 결과 A씨는 ‘제주도에 살았던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이 제주도에 살고 있는 A씨의 옛 가족들을 찾아낸 것이다. 어머니 A씨를 찾아온 제주도의 딸 김모(35)씨는 "영원히 못 찾을 줄 알았던 어머니를 다시 만나다니 하늘이 내린 축복"이라며 들떠 있었으나 지난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A씨를 부여안고 통곡해야 했다.
딸은 어머니 A씨와 함께 찍은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여 주며 "저에요. 엄마"라며 한없이 눈물만 흘렸으나 어머니는 끝내 기억을 되찾지 못했다. 딸 김씨는 "아버지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어머니를 모셔 오라 했는데…" 라며 고개를 떨구었다. 어머니 A씨의 과거에 대한 사연을 알게 된 영월의 아들은 입대를 앞두고 어머니와 누나(?)의 가슴 아픈 만남을 생각하며 안타까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 前남편, 24년째 부인 기다려…주변 ‘눈시울’
제주도 가족을 확인해 모녀의 만남을 주선한 영월경찰서 형사계 박은혁 경장은 "A씨는 사고를 당한 것만 의식할 뿐 그 이전의 일은 하나도 기억 못한다"며 "통곡하는 딸 김씨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 A씨는 오히려 몹시 멋쩍어했다"고 말했다. 경찰들은 "주변 사람 모두의 아픔과 슬픔"이라며 "세월에 맡길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제주도에 살고 있는 A씨의 전 남편은 재혼도 않고 24년 동안 부인을 기다려 왔으며, 영월의 현 남편은 아내가 자신과 비슷한 나이인 줄 알았으나 이제서야 연상임을 알게 됐다. 박 경장은 "자신의 과거를 어렴풋이나마 의식하게 된 A씨가 두 가족 사이에서 고통을 겪지 않을까 걱정"이라면서 "드라마 ‘아내’의 주인공과는 달리 행복한 결말을 맺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드라마 ‘아내’에서는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a씨(유동근)를 b씨(엄정화)가 치료하다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아들을 낳는다. 수년 후 기억을 회복한 B씨가 전 아내(김희애)와 가족을 만나게 되면서, 현 아내(b씨)와 아들의 사이에서 고통을 겪다 사고 후유증으로 죽음을 맞는 비극으로 끝났다.
영월=곽영승기자 yskwak@hk.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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