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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제5도살장 - 삶의 고통을 피할 수 없더라도 보고싶은 순간만 응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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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제5도살장 - 삶의 고통을 피할 수 없더라도 보고싶은 순간만 응시하라

입력
2005.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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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기억을 극복하는 기제는 여러가지가 있다. 가장 손쉬운(?) 것이 망각이라면,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깊은 응시일 것이다. 그 철저한 회피와 처절한 대면의 간극 사이에서 우리는, 다만, 견뎌낼 뿐이다. 삶은 그래서 어쩌면, 견딤이다.

미국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사진)의 출세작 ‘제5도살장’은 그 견딤의 한 방식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는 스무 살 때인 1943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이듬해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으며, 전쟁 막바지 영·미 연합군 800대 전폭기가 자행한 2개월간의 융단폭격으로 13만명의 목숨이 희생된 독일 드레스덴 참변의 현장에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그 고통의 기억으로부터 무려 23년을 도망쳐 다니다 1968년에야 이 소설을 발표했다. 그가 정신의 외상을 극복하기 위해 택한 방식은 고통에 대한 우회적 응시, 이를테면 ‘응시의 치고 빠지기’였다.

이야기는 화자가 빌리 필그림이라는 참전 군인의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뉴욕주 일리엄에서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난 빌리는 전쟁 중 유럽 전선에 투입돼 독일군 포로가 되고 유럽 역사상 최악의 학살을 목격한다. 그에게는 남들에게 말하지 않은 경험이 있는데, 그것은 어느 날 ‘트랄파마도어’라는 행성의 우주인에게 납치됐다가 그들의 삶을 배우고 돌아온 것이다.

트랄파마도어인에게 시간은 4차원적인 것, 즉 과거-현재-미래의 선형적이고 일관된 흐름이 아니라 미로 같은 연결 통로로 모든 시간대가 연결된 커다란 덩어리 같은 것이다. 당연히 시간이동의 능력도 있다. 산맥을 보면 ‘산꼭대기나 새나 구름, 바로 앞의 돌과 뒤쪽의 협곡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그들 눈에 인간의 시간관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가엾은 지구인은 머리에 절대 벗을 수 없는 강철 구체를 쓰고 있다. 거기에는 밖을 볼 수 있는 구멍이 딱 하나 있는데, 그 구멍에는 2미터짜리 파이프가 용접되어 있다.’

게다가 인간은 고개를 돌릴 수도, 파이프를 만질 수도 없으며, 그 같은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그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파이프 끝의 작은 점뿐’이고 ‘가엾은 그들은 파이프를 통해 무엇을 보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저게 인생이야.’ 시계열이 무시된 채 종작없이 이어지는 서사는 낯설고 현란하지만, 작가는 패러디와 블랙유머를 섞어가며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빌리의 눈에 그들(우주인들)의 삶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어떻게 그렇게 늘 평화롭고 행복할 수 있을까. 우주인의 대답은 ‘(하지만 우리도) 당신이 보았거나 읽은 어떤 전쟁보다 잔혹한 전쟁을 벌이지. 다만 우리가 전쟁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보지 않을 뿐이오. 무시해버리는 거지.’ 그들의 행복은 이런 것이다. ‘끔찍한 시간은 외면해버리고 좋은 시간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

빌리는 우주인의 세계관을 전파하느라 희한한 행각을 벌이지만 ‘당연히’ 외면당한다. 다만, 화자인 ‘나’의 제한적인 이해가 아쉬우나마 효과라면 효과다. ‘내가 이 순간 저 순간을 방문하면서 영원을 보낼 거라면, 그 중에 아주 많은 순간들이 좋은 시간인 것을 나는 감사한다.’

소설이 발표된 60년대 후반의 ‘순간’은 매카시의 광기(狂氣)가 소용돌이친 뒤였고, 미·소 진영의 군비경쟁과 베트남전쟁이 치열하던 시대였다. 당시의 젊은이들은 이 소설에 열광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신적 트라우마는 소설에서처럼 거대 역사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며, 인간이란 늘 ‘소금기둥’의 운명적 경고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뒤를 돌아보게 되는 존재이지 않던가.

소설은 작가의 다음과 같은 능청으로 시작한다. ‘이 소설은 실패작이며, 그럴 수밖에 없다. 소금기둥으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들어보라. 빌리 필그림은 시간에서 해방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끝난다. 짹짹?’

최윤필기자 walden@hk.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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