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한국영화 황금기를 이끌었던 원로 배우 황해(본명 전홍구)씨가 9일 오후 9시15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95년까지만 해도 KBS 빅쇼에 아내인 가수 백설희, 아들인 가수 전영록과 함께 출연하는 등 활동을 해온 고인은 이후 10년 넘게 당뇨병과 싸워오면서 97년부터는 외부활동을 중단했고, 최근 몇 년간은 이틀에 한 번 꼴로 혈액투석을 받아왔다.
강원 고성에서 정어리가공업을 하던 전병근씨의 1남1녀 중 첫째로 서울서 태어난 고인은 경성상업학0교를 졸업, 40년 여름 성보악극단 1회 연구생으로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입단 한달 반 만에 연극 ‘춘풍일가’ 단역으로 무대에 데뷔한 그는 두 달 뒤에는 신카나리아의 상대역으로 첫 주연을 맡는 행운을 잡았다.
그는 41년 중국 톈진의 악극단 신태양에 가입해 활동하다 일제 패망 후 전범 누명을 쓰고 6개월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예명 ‘황해’는 46년 귀국하는 배 안에서 어느 노인이 "황해 바다만큼 넓고 깊은 연기를 하라"고 권해 지은 것.
49년 여수순천반란사건을 소재로 한 한형모 감독의 ‘성벽을 뚫고’로 영화에 데뷔한 고인은 153㎝의 작지만 다부진 체구에서 뿜5어져 나오는 개성 넘친 연기로 허장강 장동휘 등 당대의 액션 배우들과 함께 전성기를 보냈다. "출연한 영화 많다고 자랑하는 배우만큼 못난 배우가 어디 있느냐"며 출연회수 밝히기를 꺼려했던 고인은 ‘청춘 쌍곡선’(1956년) ‘5인의 해병’(1961년) ‘두만강아 잘있거라’(1962년) 등 300여 편에 출연했고, 그 중 주연을 맡은 영화만 120편이 넘는다.
90년 ‘그들도 우리처럼’을 마지막으로 스크린을 떠난 그는 생전에 대표작으로 액션물이 아닌 문예영화 ‘독 짓는 늙은이’(1969년)와 ‘심봤다’(1979년)를 꼽았다. ‘부초’(1978년)로 한국연극영화예술상(지금의 한국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 ‘평양폭격대’(1971년)로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영화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2003년에는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은 백설희씨와 옥(주부) 영남(자영업) 학진(자영업) 영록(가수) 진영(음악 프로듀서)씨 등 4남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영결식은 12일 오전 8시30분 ‘영화배우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오전9시. (02)3010-2294.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