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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위기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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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위기의식

입력
2005.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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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사는 동안 누구나 적어도 한 번 쯤은 위기를 맞게 된다. 생활의 조건이나 성장과정에서 장애와 불안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시대나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 위기는 더 중층·복합적이고, 격렬한 변동을 수반하기도 한다. 사회 국가 문화의 기존 질서나 구조가 몰락, 붕괴하는 단계에 직면하면서 위기의식은 극대화한다.

■ 위기라는 뜻의 영어 crisis는 그리스어 krino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 말은 본래 분리, 단절을 의미했고, 나아가 식별, 심판을 뜻하기도 했다. 선행했던 시대와 후속하는 시대 사이의 중간에 존재하는 시대는 위기적 성격을 지니며, 시대적 전환기 때 위기의식은 더 두드러지기 마련이다. 역사과정 상 낡은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가는 데 있어 분리와 단절이 필연적이고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위기의식은 구체제의 모순, 전통적 이념의 좌절감에서 비롯되지만, 단절과 붕괴 이후의 새로운 사회나 문화를 만들어 내려는 극복의 의지이기도 하다.

■ 그러나 위기의식은 강조하면 할수록 심화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독일의 나치즘은 정치적 목적을 갖고 위기의식을 조작하고 이용했던 사례로 꼽힌다. 반면 현존하는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위기가 존재하지 않는데도 그런 것으로 망상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 또한 위기다. 위기의 실제에 대한 과대, 혹은 과소 평가나 그 내용에 대한 오판도 경계해야 한다. 1차 세계대전 발발의 원인이 이런 유형의 오류에서 비롯됐다고 지적되기도 한다.

■ 새해 들어 정치권에 너나 할 것 없이 반성, 점검, 진단, 모색들이 넘쳐난다. 부정, 경멸, 제압, 터부 등이 주름잡았던 지난해까지의 ‘깽판’을 수습하고 대중의 인정을 되찾고자 하는 절박하고 현명한 흐름이다. "지역활동을 해 보면 등에 땀이 난다"는 열린우리당이나, 여당과 대비하며 자신을 통렬히 질타하는 한나라당 지도부의 말들에서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본다. 모두가 위기의식의 발로이지만, 반 걸음이라도 전진할 수만 있다면 의미있는 진화가 될 수도 있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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