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에서 돈을 펑펑 쓴다는 세태 얘기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보름 사이에 나온 몇 가지 자료는 추계방법과 항목분류의 차이로 인해 수치가 좀 혼란스럽긴 해도 교육이나 여행, 의료·법률·컨설팅 서비스를 위해 한국인들이 해외에서 쓰는 돈이 엄청나고 그 규모도 매년 급증한다는 것을 한 눈에 보여준다.
지난달 중순 산업자원부는 작년 한해 동안 내국인들이 유학·연수, 골프관광, 비즈니스 등으로 해외에서 쓴 돈이 17조원을 훨씬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 돈을 국내에서 사용했을 경우 2003년 소비의 부가가치 유발계수(0.79)를 적용하면 13조여원의 부가가치를 낳아 GDP 성장률을 1.8%포인트 높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료가 관련 통계를 얼기설기 짜깁기한 것이라면 얼마 전 한국은행이 내놓은 자료는 보다 엄밀하다. 한국인들이 지난해 유학·연수에 24억9,000만달러, 골프관광을 비롯한 여행에 95억달러 등 해외에서 120억달러 가까이 썼는데 이를 평균 환율로 계산하면 한해 예산의 10%인 13조7,000억원에 달한다는 게 그 내용이다. 반면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쓰고간 돈은 57억달러에 그쳐 여행수지 적자가 전체 서비스수지 적자의 71%를 넘는 87억7,000만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설 연휴 직전엔 무역협회 산하 무역연구소가 "지난해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떠난 내국인은 39만4,000여명으로, 이들이 해외에서 지출한 교육비가 51억달러를 넘는다"는 보고서를 펴내며 한국에 유학 온 1만7,000여명의 외국인이 쓴 돈은 2억6,000만달러에 그쳐 교육서비스수지 적자가 49억달러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인용, 2002년 기준으로 한국의 교육수지 적자가 OECD국가 중 가장 크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이 같은 통계의 함의는 우리 경제가 극심한 소비침체로 장기불황의 함정에 빠진 만큼 가진 사람들의 애국심에 호소하거나 도덕적 무절제에 대한 자기반성을 자아냄으로써 해외 서비스 지출을 국내로 돌리자는 것일 게다. 그럴 수만 있다면 올해 GDP성장률 목표치 5%를 달성하는 것도 어렵지만은 않다. 하지만 최장 9일간의 사상 유례없는 설 황금연휴를 맞아 주요 국제 항공노선의 예약은 지난달 중순 일찌감치 마감됐고 동남아 등의 해외 골프상품도 없어서 못파는 것을 보면 사정은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왜 세계 10위의 경제규모와 구조를 가진 국내에서 돈을 쓰지 않고 국부를 밖으로 마구 퍼내는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개인의 도덕성이나 윤리의식과 관계없이 돈은 최대의 효용과 수익을 좇아다닌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같은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크고 서비스 만족도가 높으면 국적이나 친소를 따지지 않고 그리로 몰려가는 것이 돈의 생리라는 얘기다.
조기유학의 병폐나 ‘기러기아빠’‘펭귄아빠’ 등 가족해체 현상의 심각성이 사회문제화하고 동남아에서 골프와 밤문화를 즐기는 한국인들의 부정적 행태에 대한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는데도 해외로 가는 발걸음이 오히려 늘어나는 것은 부작용이나 비난 등의 비용(cost)보다 성취도나 즐거움 등의 편익(benefit)이 크기 때문이다. 400조원에 이르는 시중 %B부동자금을 움직이려고 정부가 백약을 써봐도 무효였지만 최근 돈이 좀 된다 싶으니 코스닥 등록기업의 주식공모에 수조원씩의 돈이 몰리고 수천억원대의 부동산경매펀드가 순식간에 동이 나는 것은 또 다른 예다.
경제살리기가 노무현 정부의 올해 국정 화두처럼 됐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있는 돈을 제대로 돌게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서비스수지 적자가 문제라면 교육 의료 관광 등의 국내 가격과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투자나 소비가 문제라면 관련 규제를 손질하고 고용불안을 해소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 돈의 활력을 찾아주면 된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빈부 혹은 계층 양극화는 정부가 사회정책적 차원에서 접근할 일이다. 두 가지를 혼동하는 것은 책임있는 정책당국의 태도가 아니다.
이유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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