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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 마음도 배부른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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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 마음도 배부른 명절

입력
2005.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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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서울생활한 게 10년이 넘다 보니, 명절마다 어머니가 올라오신다. 어머니는 항상 음식을 만들어주시는데, 사실 맛이 별로 없다. 밖에서 사 먹는 음식에 길들여진 탓인지, 어머니가 오랜 만에 차려준 식탁에서 먹는 둥 마는 둥 숟가락을 놓는 경우가 참 많다. 더 큰 문제는 양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내려가시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만큼의 음식이 남는다. 며칠째 냄비 뚜껑을 열어보지도 않는다. 결국 남은 음식 치우는 게 큰 골칫거리다.

어머니와 나 사이에 음식과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나는 오랫동안 청국장을 된장국으로 알고 살았다. 어릴 때부터 비린 걸 싫어해서 청국장을 먹지 않았는데, 그런 나에게 어떻게 해서든 청국장을 먹여 볼 심산으로 어머니가 묽은 청국장을 된장국이라고 둘러대셨다. 내가 진짜 된장국을 제대로 먹어본 건 고등학교 때 친구네 집에서였다.

오늘 아침, 매캐한 공기에 잠을 깼다. 집안 가득히 청국장 냄새가 진동한다. 전날의 숙취가 채 가시지 않은 나에게 어머니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다. "술 먹은 다음 날은 된장이 좋아." 식탁 위에는 청국장이 올려져 있다. 그것도 큰 냄비에 한 가득. ‘풋’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까짓 거 죽기 밖에 더하겠냐는 심정으로 청국장을 먹었다. 오랜만에 아들을 봐서 일까, 그 아들이 청국장을 잘 먹어서 일까, 어머니의 기분 좋은 수다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나 역시 그런 잔소리가 싫지 않다. 배가 더부룩하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 보다 부르다. 명절은 명절인 모양이다.

사는 게 팍팍한 세상이다 보니, 일가친척 만나는 게 쉽지 않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서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못다 한 이야기도 실컷 나누었으면 한다. 모두들 배도 부르고, 마음도 부른 그런 명절이었으면 한다.

황재헌·연극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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