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골 이몽룡, 성춘향의 거동 보아라. 티격태격 사랑싸움 하느라 정신 없더니 을유년 원단(元旦)을 맞아 바쁜 일정 미뤄놓고 한국일보 독자 여러분들께 세배를 올리는데. 만사 대길(大吉)하고 백사(百事) 여일(如一)하고 맘과 뜻 잡순 대로 소원성취 하시라는 뜻이렷다.’
불멸의 고전 ‘춘향전’을 톡톡 튀는 젊은 감각으로 패러디한 KBS 2TV 드라마 ‘쾌걸춘향’의 몽룡 재희(25)와 춘향 한채영(25)이 설빔을 곱게 차려 입었다.
툭하면 막말을 내뱉는 좌우충돌 이몽룡과 "신경 끄셔"란 말을 달고 사는 명랑소녀 성춘향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두 사람은 요즘 빡빡한 촬영 일정에 쫓겨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말도 마세요. 감독님이 밥 먹을 시간도 안 주고 촬영을 해서 초반에는 진짜 힘들었어요. 응급실 신세까지 졌어요."(재희) "12월 5일 촬영 시작한 뒤 크리스마스하고 1월1일까지 포함해서 하루도 못 쉬었어요. 오늘도 옷을 네 번이나 갈아 입는 거 보셨죠? 이번 설에도 떡국도 못 먹게 생겼어요. 계속 촬영해야 한대요. 어휴!"(한채영)
푸념이 늘어졌지만 둘 다 표정은 밝았다. ‘쾌걸춘향’이 시청률 30%을 넘보며 인기 절정을 달리는데다, 그간 키워온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비인형’이라는 별명처럼 세련되고 자기중심적인 도시여성 캐릭터를 주로 맡았고 그마저도 한중 합작 드라마 ‘북경 내사랑’(2004)의 실패로 한계에 부닥친 한채영은 더욱 그렇다. "춘향이 성격이 단순무식하고 털털한 제 성격이랑 완전 똑같아서 연기하기 편해요. 게다가 말투는 연기가 필요 없을 정도여서 즐기면서 하고 있어요." 사실 여덟 살에 이민을 가 11년을 미국에서 산 그에게 ‘춘향전’은 낯설었다. "첨엔 춘향이를 봉사 아버지 눈뜨게 해준 심청이로 착각했어요. 임권택 감독님 영화 ‘춘향뎐’ 보고 서야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죠."
‘쾌걸춘향’을 통해 한채영이 쌀쌀맞은 이미지에서 벗어나 사람의 체취를 얻었다면 재희는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김기덕 감독의 ‘빈집’에서 보여준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냈다. "영화 분위기 탓에 너무 어두운 사람으로 비쳐졌는데 이제는 편안하게 봐주시는 분들 많아요. 요즘엔 길거리에서 여학생들이 ‘몽룡이다!’ 하면서 달려든다니까요."
영화와 드라마에서 연이어 성공한 그에게 ‘억세게 운 좋다’는 시기 섞인 평도 흘러나온다. "그렇게 볼 수도 있죠. 하지만 행운이 찾아왔을 때 그걸 잡을 수 있으려면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재희의 준비기간은 제법 길었다. 고교 1학년 때인 1996년 드라마 ‘사랑해 사랑해’의 엑스트라로 출발해 "김래원, 안재모 같은 친구들이 주연하는 드라마에서 단역으로 얼굴 잠깐 비치는" 시절을 보냈다. "연기하겠다고 나섰는데 처음엔 엄마한테 씨도 안 먹히고 수업 빼먹어서 선생님한테 혼나고 촬영장에서는 돈 없어서 노숙하고 말도 아니었죠."
‘쾌걸춘향’을 통해 자신들의 부족함을 메워가고 있는 한채영과 재희. 새해 소망도 야무지다. 재희는 영화 ‘빈집’을 통해 일본 진출을 꿈꾸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빈집'을 개봉했는데 반응이 좋아 NHK 드라마 ‘약속’에 주인공 제의도 받았죠. 일본에서 비중 있게 활동할 것 같아요." 한채영도 밀려드는 드라마, 영화 제의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올해는 ‘쾌걸춘향’으로 산뜻하게 출발했는데, 연말까지 쭉 이렇게만 갔으면 좋겠어요."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사진 홍인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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