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 스님의 끈기가 정부를 움직였다.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는지는 의문이나 어쨌든 지율 스님의 단식은 정부가 여러 차례 약속을 어기면서까지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로 공사를 강행하려 한 모습과 닮아있다. 정부가 합리적인 대화와 설득을 방기한 만큼 지율 스님도 그에 상응하는 극단적 의사관철 수단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문제는 고집스러운 지율 스님과 정부의 싸움이 사실은 국민전체의 이해관계가 걸린 대리전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의 초점은 주로 기적 같은 100일의 단식에 집중되어 있을 뿐 지율 스님의 요구인 환경영향평가 재실시에 관한 것은 그리 심도있게 다루지 않고 있다. 국민이 몰랐던 진실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지율 스님이 목숨을 건 것이라면 국민 모두가 지율 스님에게 빚을 진 셈이다.
천성산 고속철도 공사착공금지 가처분 신청사건(일명 도룡뇽 소송) 항고심에서 재판부는 각하 및 기각결정을 하면서 "터널길이가 13km를 넘는 장대 터널이고 시공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지질상태를 만날 개연성도 있다"며 "기술의 한계와 시공상 실수의 발생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신청인들의 주장처럼 터널 붕괴가능성과 지하수 유출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발생개연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이는 재판부가 환경부의 의견서만을 참고한 결론이라고 밝혀 판결의 논리적 설득력을 스스로 약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전에는 정부가 환경영향평가 재실시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하더니, 법원까지 최소한의 감정도 하지 않은 채 경제여건을 이유로 핵심을 회피하고 서둘러 항고심을 마무리, 결과적으로 사회갈등을 증폭시킨 것이다.
천성산 터널공사로 인한 생태계 파괴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도룡뇽은 5종인데 그 중 천성산의 꼬리치레도롱뇽은 특1급수에서만 사는 오염지표종이다. 이 도롱뇽은 산소가 많이 녹아있는 온도인 7~10℃에서만 생존, 인적이 드문 차가운 계곡에 제한적으로 분포돼 있다. 그런데 산을 관통하는 터널공사는 필연적으로 지하수의 수맥을 건드려 습지가 마를 가능성이 매우 크며 그런 환경에서는 도롱뇽의 생존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10여년 전 실시된 천성산의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전의 환경영향평가서가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 전혀 답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제기된 것이다. 결국 최종적 수단으로 선택된 도롱뇽 소송은 경제적 효율성을 중시한 기존 계획대로의 공사 강행과 생태계 보호를 위한 공사계획 수정 중 과연 어느 쪽이 국민에게 이익인지를 합리적으로 판단해 달라는 것이었으나 앞서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로 귀결됐다.
요즘 우리나라의 국책사업에는 대부분 환경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국토와 자원을 효율적으로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1970년대 개발독재시대와는 분명히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예전보다 자연생태계 보존 자체의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게 된 것도 이유지만 생태계 보존이 인간의 건강하고 쾌적한 삶의 지속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한 국민의 정당한 요구를 외면할 경우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이미 핵폐기장과 관련한 부안 문제, 갯벌보전과 관련된 새만금 문제, 댐 건설과 관련된 동강문제에서 여러 차례 확인됐다.
지율 스님은 천성산과 자신을 동일시해 목숨을 건 단식을 감행했다. 자연이 아프면 인간이 아프고, 자연이 죽으면 인간이 죽을 수 있다는 진실을 증명하고, 하나의 가치를 위해 다른 모든 가치를 간과하는 우를 지적하고 싶었을 것이다. 정부는 지율 스님 개인의 고집에 진 것이 아니라 생태계 파괴를 우려하는 국민의 공감대에 진 것이다.
조성오 환경운동연합 법률센터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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