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산만하다. 자신들을 위한 잔치건만 통 관심이 없다. 초점 없는 눈으로 부모의 뺨을 툭툭 치거나 같은 말만 종알거린다. 하지만 ‘당근송’ 율동과 마술, 엄마들의 바이올린 협주 등 잔치가 무르익을수록 박수와 웃음이 조금씩 살아났다.
4일 경기 부천시 참좋은교회에선 ‘재미난 학교’(한국일보 2003년 8월18일 9면 보도)의 종강잔치가 열렸다. 자폐아를 포함한 장애아 70명과 학부모, 자원봉사자와 비장애 친구들이 모였다. ‘재미난 학교’는 장애아를 둔 부천지역 학부모들의 모임인 ‘장애아동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회(장미회)’가 2년 전 여름부터 방학기간에 여는 장애아교육프로그램이다. 이번이 4번째, 횟수로는 3년째다.
12살 짜리 아들을 이 학교에 보내는 정미경(42)씨는 프로그램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했다. "아이가 수업 때는 멍하니 앉아 있는데 신기하게도 집에 가면 배운 노래를 흥얼거려요. 스케이트를 배울 때는 얼마나 좋아하던지요." 학부모 20명으로 시작한 장미회는 이제 회원수만 130명이다. 지원한푼 없이도 꾸려올 수 있었던 건 회장 곽재현(48)씨의 노력 덕분이다.
곽씨는 원래 돈 버느라 아이는 안중에도 없었다고 했다. ‘다른 애보다 조금 늦은 것이려니’ 여겼던 아이가 발달장애 2급 판정을 받고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15년 다니던 직장(대우전자)도 그만두고 2002년부터 아이를 위해 전업주부(專業主夫)로 나섰다. 항상 아이 곁에 붙어있었지만 방학이 문제였다.
"30일 방학이 비장애아에겐 달콤한 휴식이지만 장애아에겐 끔찍한 악몽입니다. 정신지체나 발달장애를 앓는 아이들은 방학만 되면 학교에서 배운 것을 몽땅 까먹어요. 퇴행하는 거죠." 장애아 부모들의 한결 같은 고충이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2003년 5월 몇몇 장애아 부모들과 뜻을 같이하고 아파트단지를 돌며 실태파악에 나섰다. 부모들을 설득하고 그 해 8월 인근 학교시설을 빌어 무작정 시작했다. 특수교사도 없이 부모와 자원봉사자로만 꾸렸지만 그는 "54명의 장애아들을 한데 모은 것만도 감사했다"고 회고했다. 미술 체육 음악 정도였던 과목도 산행, 스케이트, 공예, 요리 등으로 다양해졌다. 시의 지원도 받게 됐다. 그의 노력은 인천, 고양지역의 장애아방학프로그램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는 늘 주위의 따뜻한 관심이 아쉽다. "부천에만 장애아가 200명이 넘어요. 겨우 3분의 1 정도만 혜택을 받는 거죠.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회비 5만원이 없어 아이를 방치하는 가정이 있는 겁니다."
그는 또 다른 학교를 구상 중이다. 주5일 수업에 맞춰 장애아들을 위한 ‘토요일학교’를 여는 것. 십시일반 갹출한 돈과 1일 찻집 수익금으로 준비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장애아 문제를 부모책임으로만 돌리는 사회를 선진국이라 할 수 없죠. 최근 정부가 발표한 장애아 방과후 학습도 속 빈 강정입니다. 예산책정도 안된 정책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부천=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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