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 스님과 정부가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구간(13.5㎞)에 대해 3개월간의 환경영향 공동조사에 합의함에 따라 양측의 추천으로 구성될 14명의 공동조사단이 앞으로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조사하게 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율 스님 등 환경단체는 터널공사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동시에 무제치늪 등 천성산 일대는 고산습지가 메말라 환경파괴가 불 보듯 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측과 한국철도시설공단은 "가장 안전하고 검증된 공법이 터널공법이고 환경파괴 가능성은 없다"는 입장이다.
천성산과 정족산 일원은 무제치늪 화엄늪 밀밭늪을 비롯한 자연환경보전지역과 생태계보존지역, 상수원보호구역 등 10여개 보호구역으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이 안에는 내원계곡 등 13개의 계곡과 9개의 능선이 포함돼 있다.
환경단체들은 천성산 터널공사 시 노선 수직 상부의 22개 고층습지와 계곡에서 지하수가 유출되는 등 이 지역 자연이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또 환경단체들은 멸종위기 보호종인 ‘꼬리치레 도롱뇽’ 등 30여종의 보호 동·식물이 서식지를 잃을 가능성이 있지만 1994년 11월 정부가 실시한 경부고속철도 부산-경남 환경영향평가 최종보고서에는 전혀 보고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환경단체측은 이와 함께 천성산 부근에 양산단층 동래단층 등 3개 활성화 단층이 있고 곳곳에 파쇄대(단층 활동으로 인해 암석이 깨지기 쉬운 곳)가 발달, 터널이 붕괴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무제치늪의 경우 터널로부터 수평으로 900c, 화엄늪은 2,700c나 떨어져 있어 공사로 인한 직접적인 환경피해 등 생태계 파괴는 없을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안전성과 관련해서도 "전문가들의 충분한 검토가 있었으니 안심해도 좋다"는 입장이다.
공동조사기간을 3개월로 합의했으나 이 역시 계속 쟁점이 될 전망이다. 2003년 국무총리실 산하 노선재검토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참여했던 부산가톨릭대 김좌관(46·환경과학부) 교수는 "당시 현장 답사만 다녀오는 등 실직적인 환경조사는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며 "지질탐사 등 시추조사방법을 통해 습지와 계곡 등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기간이 3개월로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3개월로 합의한 이상 이를 지켜야 하고 더 이상 공사가 지체되면 손실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지율 스님과 정부가 합의한 공동조사가 법적 절차인 환경영향평가가 아닌 법외 절차라는 점도 갈등의 빌미가 될 전망이다. 조사 결과를 어느 한쪽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산=김종한기자 tellme@hk.co.kr
■ 지율스님 점차 기력회복
100일만에 ‘목숨을 건’ 단식을 푼 지율 스님은 4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정토회관에서 일체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한방식이요법에 의한 음식섭취를 하며 방안에서 자수를 놓는 등 안정을 취하고 있다.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 스님은 이날 지율 스님을 대신해 정토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율 스님은 오전 6시에 기상한 이후 주위 사람들에게 농담을 건넬 정도로 심리적 안정을 찾은 상태"라며 "어젯밤 정부와 천성산 터널공사에 대한 극적 합의가 이뤄진 직후 한의사의 진맥을 받았는데 비타민 부족으로 입안이 완전히 헐어있는 등 기력이 극도로 쇠약해졌으나 건강에 신경을 쓰면 좋아질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전날 밤 된장을 푼 물을 마시는 방법으로 관장(灌腸)을 한 지율 스님은 이날 오전 한방식이요법에 따B라 오곡(五穀) 오과(五果) 오채(五菜) 등을 각각 끓인 물을 마시는 방법으로 영양섭취를 시작했다.
그러나 100일째 계속된 단식으로 치아가 약해지는 등 소화기 계통이 매우 허약해 정상적인 식사를 재개하기 위해서는 1개월여의 회복 기간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율 스님은 일단 주말까지 정토회관에서 매일 한의사의 진료를 받으며 기력 회복에 집중한 뒤 거취를 결정하기로 했으나 당분간은 천성산 문제에 대해서는 직접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정토회측에 표명했다.
지율 스님은 이날 외부인들의 면회를 사절한 채 방안에서 손가락 운동을 위해 법원 관계자들%9에게 보낼 ‘도롱뇽 문양’ 수를 놓으며 시간을 보냈다.
법륜 스님은 또 "지율 스님이 단식 기간에는 ‘몸과 마음을 화합시켜야 한다’는 간디의 가르침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법륜 스님은 "지율 스님이 한때 전신마비 증세를 겪는가 하면 저승사자의 환영이 보인다고 하는 등 위독했었다"며 "수행자로서 감정을 절제하며 평상심을 찾기 위해 노력한데다 국민들의 성원도 커 지금까지 견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율 스님은 당초 정부측이 권유했던 병원 입원은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륜 스님은 이에 대해 "단식에 관한 한 전문가라고 자부하고 있는 지율 스님 스스로가 입원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 정부 후속 대책은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구간 공사와 관련해 3일 밤 지율스님측과 극적인 합의를 이룬 정부의 향후 대응 전략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일단 공사 지속 여부 등 모든 내용을 양측이 추천한 전문가 5명과 정책적 판단을 내릴 2명씩 총 14명으로 구성할 환경영향공동조사단에 맡기지만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대법원의 최종 판단에 따를 계획이다.
정부측 대표로 지율 스님측과 협상을 주도해 온 남영주 국무총리실 민정수석은 4일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조사단의 조사내용"이라면서도 "그러나 환경영향조사 결과를 놓고 조사단이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현재 관련 소송이 대법원에 계류중인 만큼 대법원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런 입장 표명의 밑바탕에는 환경영향공동조사단의 조사나 합의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 결국 법원의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깔려 있다. 남 수석은 "지율 스님이 조사기간으로 제시한 3개월은 공사가 환경에 끼치는 영향 전반을 살피기에는 짧은 시간이므로 결국 지금까지의 나온 조사 내용에 의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는 지금까지 나온 환경영향평가 결과나 법원의 판단처럼 ‘계속 공사’로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일부 관계자들은 "만약 조사단이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결론지을 때는 공사 구간도 변경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지만 내심으로는 그럴 가능성은 없다는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그러면서 정부는 지난해 부산고법의 소송기각 결정 때처럼 지율 스님이 혹시 조사단의 합의나 법원 판결 내용에 대해 수용 거부 뜻을 밝힐 경우에도 대비했다. 남 수석은 "3일 밤 도법 스님과 문규현 신부 등으로부터 결정 사안을 무조건 받E아들인다는 뜻을 전달받았다"고 전했다.
박상준기자 butto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