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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맛있는 주말-박재은의 음식이야기-뼈 빠지게 일만 하는 '엄마의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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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맛있는 주말-박재은의 음식이야기-뼈 빠지게 일만 하는 '엄마의 설'

입력
2005.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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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서른이 넘도록 ‘결혼’의 ‘ㄱ’자만 보면 치를 떨게 만든 이는 다름 아닌 나의 모친이다. 그 분의 존함은 김영희요, 순 서울 출신의 우아한 부인이다. 김영희 여사로 말할 것 같으면 나이 스물넷에 동갑내기 남편을 만나 첫 정에 결혼했으며, 이어 태어난 두 남매를 금과 옥처럼 길러 내신 분이다.

‘정경마님’이라는 별칭만큼 엄하셨던 외할머니의 네 딸 중 가장 영특하고 재주가 많았던 엄마. 엄마는 ‘정경마님’의 소문난 음식 솜씨나 살림법은 물론, 학업까지 뛰어난 일등 신부 감으로 성장하여 박가네 맏며느리가 된 것이다. ‘삼팔 따라지’라고 농을 하곤 하는 나의 친가 식구들. 삼팔선 넘어 남쪽에 온 평안도 분들이다. 아버지나 오빠들과의 겸상은 꿈에도 할 수 없었던 엄마는 할아버지부터 막내 며느리까지 신식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는 시집의 문화로 들어가게 되었고, 수를 놓듯 정갈하게 고명을 올린 서울 음식에 비해 푸짐하고 투박하게 보이던 이북 음식은 낯선 맛이었다. 그 가운데 명절마다 여자 몇 명이 붙어서 전쟁처럼 만들던 빈대떡과 만두가 김영희 여사의 차지로 낙찰 되면서, 그녀의 오랜 시집 살림이 시작 되었다.

이것이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일이다. 필자가 막 걸음마를 할 때부터 ‘명절’은 곧 ‘엄마가 뼈 빠지게 일하는 날’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사업을 크게 하시며 많은 지인들과 한 잔 술 나누는 것을 낙으로 삼으셨던 할아버지 덕에 특히 정월 초하루에는 친가에 드는 손님이 100명을 넘기도 했었으니까. 고작 대여섯 살 되었던 내가 남동생을 업고 다니며 "엄마는 왜 이렇게 일을 많이 해?"하고 할머니께 어린 눈을 흘기던 순간들. 판사가 되라는 외조부의 기대나 디자이너를 꿈꾸었던 엄마의 젊은 날은 그대로 그렇게 지나갔다.

시간은 흘러, 1970년대의 김 여사는 2005년 초하루를 앞에 둔 오늘도 빈대떡을 부칠 채비를 한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산소에 가져갈 것이라며 온 정성을 다함은 여전하고. "내가 엄마 때문에 여즉 시집을 안 갔잖아. 시집 가면 누구나 다 이러고 사는 줄 알았으니까."라고 핀잔하는 나. 그래도 "우리 며느리 빈대떡이 세상 최고"라 자랑하시며 허허 웃던 할아버지가 그리울 뿐, 당신 몸 힘들다는 생각은 않고 산다는 울 엄마. 30년이 넘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껴주는 남편을 보면 가족들에게, 혼자되신 시어머니에게 김치라도 한 조각 더 싸드리게 된다고 하니. 이목구비가 유난히 큼직하고 잘생긴 얼굴로, 멋진 마님행세나 할 법한 외모의 엄마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면 나는 혀를 끌끌 차며 부엌을 나와 버린다. 등 뒤에서 엄마가 "너는 편하게 살어. 니 신랑하고 둘이서 설날 연휴에 여행도 다녀보고…." 한다.

유명 디자이너도, 판사도 아닌 내 엄마를 설날이면 유독 다시금 올려보게 되는 자식들의 마음을 당신은 아시는지. 엄마의 다음 설에는 빈대떡과 만두 대신 온천에라도 가자고 떼를 써볼까 하는 안쓰러운 내 사랑을 당신은 아시는지.

푸드채널 '레드쿡 다이어리' 진행자

◆ 녹두전

녹두200g, 부침가루 3큰 술, 다진 돼지고기 70g, 숙주 70g, 말린 고사리 50g, 식용유, 청주, 소금, 간장, 참기름%, 파, 마늘.

1 녹두는 물에 불렸다가 곱게 간다.

2 고기는 잘게 다져서 청주 약간, 마늘 약간에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한다.

3 숙주와 고사리는 각각 데치거나 삶아서 간장 약간, 파 마늘 약간, 참기름 약간으로 간한다.

4 1·2·3을 볼에 담고 차가운 생수와 부침가루를 넣고 걸쭉하게 만든 다음 지져낸다.

●본 메뉴는 엄마의 조리법이 아닌 수덕사 앞 모 식당에서 얻은 레%B써피다.

◆ 만두 스프링 롤

만두, 춘권 피, 식용유, 달걀노른자.

1 춘권피를 한 장 펴고 그 위에 만두를 올린다.

2 피의 양끝을 접고 잘 말아서 롤을 만들고 솔기는 노른자로 풀칠하여 붙인다.

3 뜨거운 튀김 기름에 노릇하게 튀겨 내어 양념장과 곁들인다.

●남은 만두를 이용하여 만들 수 있는 술 안주 및 간식거리다.

◆ 천사채 비빔

천사채1봉, 오이30g, 고추장 1큰 술, 식초 1/3큰 술, 설탕1/2큰 술, 간장과 참기름 약간, 깨

1 천사채는 물에 행구어 결을 풀어준 다음 체에 받아 물기를 뺀다.

2 고추장, 식초, 설탕, 간장, 참기름을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3 오이는 얇게 썰어서 소금, 설탕, 식초에 잠시 담갔다가 숨이 죽으면 물기를 짜둔다.

4 1·2·3을 섞어서 면기에 담고 깨를 뿌린다.

●다시마 추출액으로 만든 천사채는 저칼로리에 무지방이라 명절 중간에 먹는 다이어트 식으로 알맞다. 오이와 함께 잘게 썬 김치를 넣어도 좋고 깨를 뿌릴 때 구운 김가루를 첨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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