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프로농구 선수가 맞나 싶었다. 두툼한 볼 살이며 볼록 나온 배를 보니 말이다. 또 하나. 명색이 농구 선수 집에 농구공 하나 없단다.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이 사람. 2005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순위 8번으로 대구 오리온스에 깜짝 지명된 정상헌(23)이다. 쇄도하는 축하전화로 휴대폰이 불이 난다는 그를 3일 만났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드래프트에 참가했어요. 잘 해야 연습선수인 줄 알았는데 저도 깜짝 놀랐어요."
지금은 몸이 망가져 108kg(191㎝)의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있지만 경복고 시절 정상헌은 한국농구의 미래를 짊어질 선수로 평가됐다. 그의 포지션은 가드. ‘농구 천재’로 불린 그는 각종 대회에서 재치있는 플레이와 정확한 외곽슛으로 팀 승리를 도맡았다.
고3때는 동갑내기 방성윤(당시 휘문고)과 쌍두마차를 이루며 아시아청소년대회 우승과 아시아영맨대회 준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고교생으론 방성윤과 단 둘이 출전한 영맨대회에서는 쟁쟁한 대학생들을 제치고 전 경기 주전으로 뛰었다.
너무 잘 나간 걸까. 고려대에 들어가면서 모든 것이 엉망이 됐다. "갓 들어온 새까만 녀석에게 자기 자리를 뺏긴 선배들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겠죠. 시기를 많이 받았어요." 군대처럼 틀에 얽매인 훈련 방식도 참기 힘들었다.
2001년 가을에 ‘기회’가 왔다. 발목 부상 치료차 잠시 훈련을 쉬었다. 그런데 그게 너무 좋았다. 구속을 벗어나 만끽하는 해방감에 정신 없이 놀았다. 발목은 나았지만 다시 농구부를 찾는 일은 없었다.
2002년 겨울. 농구가 다시 하고 싶었다. 우상인 이충희 감독이 고려대에 부임했기 때문이었다. "감독님께 싹싹 빌었어요. 기회만 주시면 정말 열심히 하겠다고요." 1년간 열심히 했지만 또 문제가 생겼다. 이번엔 발등 부상. "치료 마치고 돌아오니 이 감독님도 떠나시고…그래서 농구부 발길을 끊었어요."
스스로를 ‘망나니’라고 부르는 그의 1차 목표는 체중 30kg 감량. 이는 김진 오리온스 감독의 명령이기도 하다. 함께 잘 나가던 방성윤은 NBA 문을 두드리는데 부럽지 않냐고 묻자 그의 눈이 커진다.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사람은 나름의 꿈이 있잖아요. 죽기살기로 열심히 운동할 겁니다. 이번이 제 농구인생 마지막 기회니까요."
김일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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