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꾼의 꿈은 누가 뭐래도 백두대간 종주이다. 사회생활을 포기하거나 잠시 중단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꿈’이다. 아쉽지만 맛이라도 보기 위해 등장한 것이 2~3일의 일정에 맞게 나눈 부분종주이다. 부분종주를 경험한 산꾼들에게는 무더위와 싸웠던 기억이 가장 크다. 대부분 여름휴가 기간이었다. 이번 설 연휴는 겨울휴가나 마찬가지. 전혀 다른 모습의 백두대간을 찾는다. 팥죽 같은 땀이 아니라 감동의 눈물을 펑펑 흘릴 만큼 아름다울 것이다.
눈이 하얗게 덮인 산길을 걸으며 마음도 하얗게 비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한다면 더욱 좋겠지. 그러나 겨울에 온가족이 본격적인 산행을 하는 것은 무리. 산책(散策)과 산행의 중간에 해당되는 트레킹이 적당할 듯하다. 아름다운 여행지를 곁에 두고 있는 트레킹 명소를 찾는다. 바람은 맵지만 가족의 호흡이 함께 하면 오히려 훈훈하다.
◆ 지리산 구간(노고단~천왕봉)
과거 지리산 종주는 ‘평생 산을 사랑하며 살겠다’는 산사람의 서약의식 같은 것이었다. 초보산꾼의 딱지를 떼는 고생스러운 통과의례이기도 했다. 등산로가 정비되고 체계적으로 관리되면서 이제는 종주 인구가 많이 늘었다. 초등학생들이 단체로 종주하기도 한다. 용기와 끈기만 있으면 제대로 된 산꾼의 명함을 만들 수 있다.
종주 코스는 노고단에서 천왕봉(1,915m)을 잇는 주능선. 지도상의 거리가 25.5km이다.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지는데다 등정과 하산 코스까지 합치면 족히 60km, 20시간 이상을 걸어야 한다. 여유있게 걷는다면 2박 3일이 걸린다. 노고단-천왕봉 코스가 일반적이다. 원래는 천왕봉에 먼저 오르는 게 백두대간의 시작이지만 체력소모가 심하다. 노고단에서 출발할 경우 산 아래 1시간 지점인 성삼재휴게소까지 차를 이용할 수 있다. 전남 구례군 구례%A읍. 구례 공용터미널(061-782-3941)에서 성삼재 휴게소 행 버스(오전 6시부터 2시간 간격)가 출발한다.
성삼재에서 산행을 시작, 노고단-임걸령-노루목-명선봉- 벽소령대피소(016-852-1426)-선비샘- 영신봉-세석평전- 장터목대피소(016-883-1750)-천왕봉의 여정이다. 산행 능력에 맞게 일정을 짜, 밤을 보낼 대피소를 미리 예약해야 한다. 국립공원 내의 대피소는 2일전까지 인터넷(www.npa.or.kr)으로 예약을 받는다. 지리산탐방객안내소 (061)783-9106
◆ 덕유산 구간(육십령~향적봉)
한 때 최고의 피서지로 꼽혔던 덕유산은 이제 겨울 명소가 됐다. 최고봉인 향적봉(1,614m) 북쪽 기슭에 무주리조트가 있기 때문이다. 이 시설을 만들기 위해 등성이에 큰 흠집을 냈다. 그래서 산꾼들은 이 산에 들면 가슴이 미어진다. 향적봉은 백두대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분종주를 하는 이가 굳이 피해갈 이유가 없다.
덕유산 종주는 1박 2일은 빠듯하고 2박 3일이면 넉넉하다. 남덕유산 아래 육십령에서 나제통문까지 약 40km 구간이다. 험한 구간이 많아 만만치 않다. 육십령까지는 전북 장수군 계남면 장계리에서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2박 3일을 기준으로 할 때 첫 날은 육십령-서봉-남덕유산-삿갓봉을 지나 삿갓재골 대피소(011-423-1452)에서 1박을 한다. 가파른 구간이 많다. 처음부터 호흡조절이 필수, 둘째 날은 무룡산-동엽령-백암봉- 중봉을 거쳐 향적봉에 오른다. 짧은 코스지만 능선 좌우로 환상적인 풍광이 펼쳐지는 산행이다.
향적봉 대피소(063-322-1614)에서 일찍 잠을 청한다. 일출을 보기 위함이다. 셋째 날은 일출을 보고 백련사를 거쳐 구천동 계곡을 내려온다. 지쳤다면 향적봉에서 약 20분 거리의 설천봉으로 이동해 무주리조트의 곤돌라를 타고 하산하는 방법독법도 있다. 덕유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063)322-4445, 남덕유분소 (063)322-3174
◆ 설악산 구간(한계령~마등령)
설악산은 국내 최고의 여행지. 어떤 여행 관련 여론조사라도 어김이 없다. 그러나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1,708m)에 오르는 이는 설악을 찾은 사람 1,000명 중 한 명도 되지 않는다. 산 아래에 평지에서만 몰려다니다가 ‘설악산에 다녀 왔다’고 허풍을 떤다. 설 연휴에 한 번 용기를 내어보는 것은 어떨지.
설악산의 백두대간길은 44번 국도의 한계령에서 시작된다. 인제와 양양을 오가는 모든 직행, 시외버스는 한계령에서 정류한다. 휴게소 뒤로 난 가파른 등산로를 약 2시간 30분 오르면 서북능선길과 만난다. 오른쪽으로 꺾어 다시 약 4시간을 걸으면 끝청-중청봉을 거쳐 대청봉에 닿는다. 중청(033-672-1708) 혹은 소청대피소(018-748-7031)에서 1박을 하고 희운각을 거쳐 공룡능선을 탄다. 좋은 계절에도 힘든 곳이 공룡능선. 약 4.5km로 지도상의 거리는 짧지만 1km를 가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린다. 길 또한 어지럽기 때문에 반드시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앞장을 서야 한다. 나한봉을 지나면 마등령. 백두대간길은 여기까지이다. 가파른 길로 하산한다. 약 2시간이면 비선대이다. 설악동의 번화가도 눈에 들어온다.
설악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033)636-7700
권오현기자 koh@hk.co.kr
◆ 오대산 월정사~상원사길
오대산은 우리 국토에서 손에 꼽히는 육산(바위보다는 흙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바위산이 위압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반면 육산인 오대산은 어머니의 품같이 푸근하다. 오대산을 오르는 길은 다양하다. 그 중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약 8km 구간은 오대산의 아늑함에 푹 빠질 수 있는 정감 넘치는 길이다.
평탄한 길이어서 트레킹이라기 보다는 산책에 가깝다. 대형 버스 두 대가 교행할 수 있을 정도로 길은 넓다. 행락철이면 먼지를 풀풀 날리며 승용차가 줄을 잇는다. 겨울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먼지도 나지 않고, 특히 눈이 많이 쌓이면 일반 차량의 통행이 금지된다. 하얗게 언 오대천 계곡이 계속 길과 함께 한다. 넓은 눈길에서 뛰고 구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행복하다.
월정사와 상원사는 무게가 만만치 않은 절이다. 월정사는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대찰. 절 주위로 뻗어있는 아름드리 전나무숲길이 압권이다. 권선문, 8각9층탑 등 아름다운 문화재가 많다. 상원사에도 불교 유적이 많다. 국보 36호인 상원사 동종, 고즈넉한 영산전 등이 눈길을 끈다. 조금 욕심을 낸다면 왕복 약 1시간 30분을 더 투자해 적멸보궁에 들르는 것도 좋다. 오대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033)332-6417
◆ 백담사 가는 길
대한민국에서 가장 분위기 있고 아담한 절로 꼽혔었다. 이제는 우람한 대찰이 됐다. 전두환 전대통령의 은신처가 된 이후의 일이다. 입구 주차장부터 절에 이르는 계곡길에 시멘트 포장을 입혔고 중간지점까지 셔틀버스가 운행한다. 그래서 붐빈다. 특히 단풍철이면 무질서가 판을 쳐 진정한 산꾼들은 오히려 이 계곡을 피한다. 예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때는 겨울이다. 셔틀버스 운행도 중단되고 계곡은 다시 적막강산으로 변한다. 이 길은 내설악의 입구인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서 출발해 오세암-봉정암- 정상에 오르는 설악산의 대표적인 등산로이다.
용대리 주차장에서 백담사까지의 길은 그 길6의 초입에 해당된다. 약 7.5km의 짧은 길이지만 백담계곡의 아름다움을 모두 지니고 있다. 왕복 4시간이면 충분하다. 길은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완만하다. 백담사에는 묘한 세계가 존재한다. 만해 한용운의 자취와 전두환 전대통령의 흔적이다. 깊은 산 속,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두 사람의 조우. 상념에 잠기게 한다. 백담사에서 약 200m만 더 오르면 백담산장이다. 언 볼과 입을 따끈한 컵라면으로 녹일 수 있다. 설악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 백담분소 (033)462-2554
◆ 대관령 원조 옛길
우리 조상들이 넘나들던 길이다. 1975년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옛길’로 밀려났다가 2001년 고속도로 대관령 구간이 직선화하면서 아예 ‘원조 옛길’이 됐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동·서의 사람과 산물과 역사가 교통을 하던 역사적인 길이다. 구 고속도로 대관령 휴게소터에서 멀지 않은 반정(半程)에서 강릉시 어흘리의 대관령박물관까지의 약 5km 구간이다. 서너 명이 어깨동무하고 걸을 수 있는 폭을 가진 완만한 산%A길이다. 박물관에서 반D정까지 올랐다가 다시 하산하면 약 4시간, 반정에서 편도로 내려가기만 하면 1시간 40분 정도면 족하다.
대관령 휴게소에서 강릉 방면으로 약 1km 내려가면 고갯길 오른쪽에 반정이라고 쓴 비석이 있다. 옛날 횡계와 강릉 파발역의 중간 지점이라는 뜻. 이 반정 옆으로 옛길이 나 있다. 중간 지점에 나그네가 목을 축이던 주막터가 있다. 주막터를 중심으로 윗길은 구불구불한 비탈길, 아랫길은 비교적 올곧게 뻗은 평지이다. 눈이 많이 쌓이면 완만한 내리막에서 주저앉아 오궁(오리궁둥이)썰매를 즐길 수 있다. 교통이 조금 불편한 것이 흠. 박물관에서 출발하는 왕복코스라면 차를 세워두면 되지만 편도만을 택한다면 한 사람이 차를 도착지점까지 이동시켜야 한다. 강릉이나 횡계에서 마땅한 버스편이 없다.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강릉시 관광안내전화 033-1330.
◆ 한라산 성판악길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1,950m)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비전문가들은 지레 겁을 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라산 산행은 아이들도 쉽게 오를 수 있을 정도로 편하다. 한라산을 오르는 길은 모두 네 곳. 보통 어리목코스, 영실코스, 성판악코스, 관음사코스로 불린다. 이중 가장 평탄한 성판악코스는 산행이라기보다는 트레킹이 걸맞다.
길은 제주도답게 돌길로 이어져 있다. 위험한 곳은 대부분 나무로 길을 냈거나 계단을 올렸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조릿대(키가 작은 산죽), 낙엽송, 진달래 등 수목의 변화를 바라보는 맛도 좋다. 길 바깥으로는 눈이 많이 쌓였다. 눈 위에 노루, 토끼 등 산짐승의 발자국이 나있다. 운이 좋으면 발자국의 주인공을 직접 볼 수도 있다.
한라산의 8부 능선에 있는 진달래 대피소는 결단의 장소. 그 위로는 길이 가팔라지는 데다, 특히 바람이 많이 불면 가족과의 동행이 어렵다. 정상 부근의 바람은 그냥 ‘강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몽둥이로 때리는 것 같다. 노약자가 있다면 대피소에서 발길을 돌리는 것이 좋다. 그러나 아쉽지는 않다. 하산 길의 한라산 풍경은 올라갈 때의 그것과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한라산국립공원 성판악지소
■ 초보산꾼 겨울산 안전하게 만나기
눈길 산행의 제1원칙은 안전. 겨울 산바람이 매섭고 날씨도 변덕스러운데다 눈길에서의 작은 실수는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진다.
필수 장비는 아이젠과 스틱. 아이젠은 길을 떠나기 전 미리 등산화에 부착해 끈 등을 조절한 뒤 꺼내기 쉽게 배낭의 윗부분에 넣는다. 스틱은 평탄하고 뚜렷한 길에서는 줄여서 안전하게 배낭에 꼽아놓는다. 주위 사람들에게 흉기가 될 수도 있다. 눈이 쌓였는데 그 깊이를 짐작하지 못할 때, 발목이 빠지기 쉬운 너덜지대(바윗길), 부상을 당해 의지가 필요한 경우에 사용한다. 특히 체력이 떨어졌을 때 내리막길에서 유용하다.
추위에 노출되는 것은 체력을 빼앗기는 것과 마찬가지. 탈진이 쉽게 오기도 한다. 두꺼운 옷 한가지보다 얇고 보온력이 좋은 옷 여러 벌을 겹쳐 입는 것이 낫다. 예상보다 따뜻하면 기온에 따라 적당히 벗을 수도 있다. 또 옷이 젖을 때를 대비해 여벌을 준비하는 것도 잊지 말도록. 장갑은 방수가 되면서 보온력이 좋은 것을 선택한다. 안에 낄 수 있는 모직장갑이나 목장갑을 준비하면 도움이 된다.
눈길 산행은 등산화 앞과 뒤로 눈을 찍는 보법이 효과적이다. 내리막길에는 시야를 발 앞보다 조금 멀리 두고 발걸음을 과감하게 옮겨야 덜 위험하다. 코스 선정에서 모험은 금물. 눈에 덮인 겨울 산은 곳곳에 함정과 빙판이 있기 때문에 정해진 등산로가 아니면 아예 발길을 들여놓지 않는 게 상책이다. 명심 또 명심! 떠나기 전에 현지 상황 파악, 악천후에는 미련없이 포기, 야간 산행 절대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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