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람들은 매년 7월 중순과 12월 중순이면 친지나 지인 등 신세를 진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을 보내는 것을 예의로 여긴다. 시기나 개념은 좀 다르지만 우리의 추석과 설 명절에 견줄 수 있는 이 때 보내는 선물 혹은 그 문화는 각각 오추겐(ぉ中元), 오세보(ぉ歲暮)라는 이름으로 일본사회에 뿌리내렸다. 선물 액수는 우리 돈으로 건당 2만~4만원 정도지만 주고받는 양이 워낙 많다 보니 도소매업계는 이 시기에 연간 매출의 5% 가까운 실적을 올린다고 한다.
■ 지난해 추석 때 상공회의소는 이 같은 일본 문화를 소개하며 부패방지위원회에 "뇌물성 선물은 철저히 단속해야 하겠지만 소비심리 활성화와 미풍양속 유지를 위해선 합리적인 선물문화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는 요지의 건의서를 제출한 적 있다. 그 덕분에 재미를 좀 봤다고 여겼는지, 박용성 상의 회장이 최근 또다시 미풍양속을 들이밀며 전국 13만 상공인들에게 "설 선물을 주고받아 내수회복의 신호탄을 쏘자"는 요지의 이메일을 보냈다.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벌여온 선물 안주고 안받기 운동은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서로 간에 작은 정성을 전하는 합리적인 문화로 거듭나야 한다"는 내용이다.
■ 지난해 말 이해찬 총리도 국무회의 석상에서 "연말연시에 이웃 간 따뜻한 마음과 온정을 나누는 미풍양속 차원의 선물 주고받기를 권장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한 적 있다. 아무리 군불을 때도 얼어붙은 내수가 살아나지 않자 생뚱맞게 미풍양속을 들이민 것이다. 그러나 세상물정 모르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워낙 깊었던 터라 여론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두달 전 이헌재 경제부총리도 비슷한 말을 한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IMF 땐 금모으기, IMF보다 더한 위기땐 선물 돌리기가 가장 유효한 정책수단"이라고 비아냥댔다.
■ 엊그제 청와대는 "노무현 대통령이 설을 맞아 사회지도층 인사와 취약계층 등 3980명에게 5만원 상당의 ‘국민통합형’ 선물을 보낸다"며 전북 전주 이강주, 경남 산청 지리산 곶감, 경북 경산 대추, 강원 평창 잣, 충북 황간 호두가 내용물이라고 소개했다. 말은 안했지만 굳이 이를 공개한 의도는 이 총리의 속마음과 같을 것이다. 한국경제의 위상이 세계 10위로 올라섰다는 산업자원부의 발표와 이 풍경을 오버랩해 보면 참으로 재미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래도 선물을 주고받으면 경제가 살아난다는데, 착한 백성들이 한번 더 선심을 쓰는 수밖에.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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