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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변화된 사회와 조화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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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변화된 사회와 조화될 수 없어"

입력
2005.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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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수년간 폐지논란의 대상이었던 ‘호주제’가 마침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위헌제청이 제기된 지 4년 가까이 지나, 그것도 정치권이 호주제 폐지에 사실상 합의한 뒤에 헌재가 뒤늦게 ‘막차’를 탔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번 결정으로 호주제 폐지와 이에 따른 후속 제도마련에 완벽한 힘이 실리게 됐다.

헌재는 개인의 존엄성과 평등을 해치는‘전통’은 더 이상 ‘전통’이 아니라는 전제로 문제를 풀어갔다. 이 과정에서 충돌한 헌법 조문은 ‘전통B문화의 계승·발전’을 규정한 헌법 제9조와, ‘혼인과 가족생활의 개인존엄 및 양성평등’을 규정한 헌법 제36조 제1항. 각각 호주제는 계승해야 할 전통이라는 주장과, 양성평등과 개인의 존엄을 침해하는 악법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된 조항이다.

다수 의견을 낸 6명 재판관은 이에 대해 "전래의 가족제도가 양성 평등에 반(反)한다면 헌법 9조를 근거로 정당성을 주장할 수는 없다"며 호주제가 헌법 36조에 위배되고 ‘불편과 고통을 주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머니와 누나들을 제치고 아들이, 또는 할머니 어머니를 제치고 손자가 호주의 지위를 승계하는 등 철저히 남성 우월적 서열을 매김으로써 남녀를 차별적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 부부는 혼인관계의 대등한 당사자 임에도 아내가 일방적으로 남편의 호적에 편입되게 함으로써 아내의 남편에 대한 수동적·종속적 관계를 고착 시켰다고 밝혔다.

호주제의 가장 큰 폐해로 지적돼온 사례도 언급됐다. 다수 의견은 어머니의 재혼으로 새 아버지와 살면서도 옛 아버지의 성(姓)을 따라야 하는 자녀의 입장에 대해 "법률적 가족관계를 형성하지 못해 비정상적인 가족으로 취급됨으로써 겪는 불편과 고통은 이혼율과 재혼율이 점차 높아지는 상황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사회문제"라고 말했다.

헌재는 결론적으로 "호주제는 변화된 사회환경 및 가족관계와 조화될 수 없어 존재의 이유가 없어졌다"고 밝혔다. 특히 민법 778조(호주의 정의) 민법 781조1항(자녀의 입적) 외에 위헌제청 대상이 아니었던 민법 826조3항 ‘처(妻)는 부(夫)의 가(家)에 입적한다’는 조항에 대해서도 직권으로 위헌결정을 내려 호주제의 폐지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드러냈다.

반면 소수의견을 낸 권성 재판관은 "도식적인 평등의 잣대로 전통 가족문화가 송두리째 부정되고 해체되어서는 안 된다"며 유림(儒林)과 같은 목소리로 호주제의 합헌성을 주장했다. 김영일 재판관은 자녀에게 새 아버지의 성을 따를 수 없게 한 민법 781조1항의 일부분에 대해서만 위헌성을 인정했다.

김효종 재판관은 "호주제의 양성 차별성은 ‘호주승계의 순위’를 규정한 민법 제984조를 개선하면 해소되는 것"이라며, 민법 781조1항과 826조3항의 위헌성은 인정하면서도 호주를 두는 것 자체(민법 778조)는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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