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에는 환경변화에 따른 이상기후가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다. 서남아시아 쓰나미 피해도 그렇지만, 평소 눈 구경하기 힘든 하와이나 지중해 섬들에 눈이 온다거나, 근래 환경학자들이 내놓은 구체적인 지구환경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통계들을 보면 마음 씁쓸하다 . 올 겨울 서울 경기 지방에는 유난히도 눈이 안 온 반면, 남해와 동해안에는 엄청난 눈으로 피해를 보기도 했다.
과거에 겨울은 몹시 추웠던 기억도 있지만, 유난히 눈도 많이 왔던 기억이 있다. 눈이 오면 요즘처럼 자동차가 많지 않았던 시대라 모두가 즐거운 모습이었다. 집 앞 눈도 쓸고, 거리에는 어린이들이 눈사람을 만들고, 함께 모일 때면 눈덩이가 여기저기에서 날아 오곤 했다. 잠시이지만 눈이 온 다음에는 세상의 때묻은 모든 것들이 흰 눈에 덮여 마냥 순백하고 아름답게만 보였다. 눈 덮인 세상을 바라보노라면 마음 한구석에 지녔던 순수하고 깨끗했던 본심(本心)을 발견하고 잠시 가슴 찡하던 기억도 난다.
요즘 사람들은 삶에 지치고, 바쁜 일상 속에서 과거에 누렸던 작은 행복들을 잃어버리고 산다. 생활고에 시달리고, 실업난에 허덕이면서 과거의 감상적 추억에 젖어 드는 일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편리한 자동차문화 덕분에 눈이 오면 출근길 교통대란을 더 걱정하며 산다.
하지만 그런 고통스럽고 험난한 삶의 애환 속에서도 언젠가 삶의 뒤안길에 서서 ‘과연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는가’ 되돌아볼 기회가 온다면 오늘을 그저 아프게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눈 덮인 세상을 보면서 오랫동안 잊었던 순수하고 아름답던 옛 마음을 잠시라도 되찾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새해를 시작하고 한 달이 더 지났다. 연초 결심했던 일들을 얼마나 해내고 있는지 반성해 보는 것도 마치 눈 속에 덮였을 나의 본심을 다시금 깨닫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송용민 신부·인천가톨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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