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B형 남자친구’를 보는 가장 큰 재미가 이동건의 웃음과 한지혜의 늘씬한 다리라고 하지만, 나의 경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동건이 타고 나오는 조그맣고 앙증맞은 차 미니쿠퍼다. 차 앞에 서서 여자친구에게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여자관객을 쓰러뜨리려 작정한 그 장면에서는 저렇게 멋진 남자와 꼭 어울리는 귀여운 차로군, 생각했다. 돈 많이 벌면 꼭 사겠다는 다짐과 함께. 엄밀히 말하면 이 차는 PPL(간접광고) 물품은 아니다. 영화 속 등장한 미니쿠퍼는 촬영 당시 국내에 딱 한대밖에 없었던 터라 주인에게 하루 150만원 가량의 임대료를 주고 사용했다.
차를 제외하고 이 영화에는 PPL과 협찬 물품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한지혜가 친구들과 벤치에 앉아 소시지 ‘키스틱’을 먹는 장면에서는 영화의 세계에서 잠시 미끄러져 나와 소시지 CF를 보는 듯 배가 고파졌다. 그녀가 백화점에 들러 랄프로렌, 토미 힐피거, 키이스 같은 브랜드 매장을 스쳐 지나며, 새 옷을 입고 빙그르 돌 때는 "오랜만에 나도 옷 좀 사 볼까" 하는 욕구가 충만했고, 남녀 주인공이 롯데월드 엘리베이터에서 ‘슈퍼맨 놀이’를 할 때는 나도 저기 꼭 가 봐야지, 마음 먹었다. "다 PPL이야, PPL!"이라고 말하면서도 보는 족족 사고 싶고, 먹고 싶어지니 참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영화와 PPL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너무 노골적이면 영화를 보는 내내 수없이 여러번 영화의 세계를 빠져 나와 CF의 세계로, 또 다시 영화의 세계에 진입해야 하는 통에 영화에 대한 집중도는 현저하게 떨어진다. 때문에 이왕 PPL을 하려면 에피소드에 좀 녹아 들게 하는 게 어떨까 싶다.
‘말아톤’에도 수없이 많은 제품들이 등장한다. 초원은 너무도 지저분한 코치 선생님의 옷장을 살펴 보며 "꼭 한 벌쯤은 캠브리지 멤버쉿버스~"라고 외친다. 또 오래동안 감지 않은 선생님의 머리냄새를 맡으면서 "기름기 진득진득 댄트롤 샴푸"라고 말한다. 대형마트 여성용품 진열대 옆에서는 "커버가 확 바뀌어 보송보송하고 부드러워요. 나를 지켜주니까 위스퍼~"라고 CF 카피를 줄줄이 늘어 놓는다.
하지만 영화 속 에피소드에 절묘하게 녹아 들어 거부감이 없다. 사실 시간이 부족해 미처 PPL 협찬을 받지 못해, 초코 파이와 운동용품을 제외하고는 PPL 용품이 아니었다고는 한다. 하지만 PPL 제품이 맞았다 하더라고 댄트롤 샴푸나 위스퍼 PPL에 대해서는 별 거부반응이 없었을 듯하다. 너무 재미난 장면이었으니까 말이다.
mi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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