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 장사에 나서더니 이제는 동료한테 시너까지 뿌리네요. 민주노총 맞나요?" 노사정 대화 복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일 소집된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가 폭력으로 얼룩지면서 민주노총과 노동계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기아자동차 노조 광주지부가 채용비리를 저지른데 이어 이날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조차 지키지 않는 노조의 행태가 드러나면서 노동운동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던 시민과 네티즌들마저 등을돌리고 있다.
2일 민주노총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임시대의원대회의 폭력사태를 비난하는 네티즌들의 글이 300여개나 올라왔다. ‘시민’이라는 ID의 네티즌은 "민주노총이 기아차 노조의 잘못을 사과한다고 했지만 임시대의원대회를 보면 정말 사과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민주노총 대의원들은 민주라는 단어가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ID가 ‘한탄’인 네티즌은 "우리나라 노조 중 가장 선명하고 서민과 약자를 대변한다고 생각했던 민주노총에 대해 믿음을 잃게 됐다"고 말했다.
주부 심모(53)씨는 "남편이 조합원이어서 자연스레 노동운동을 마음 속으로 지지해 왔다"며 "하지만 기아차 사태와 이번 폭력사태를 보면서 노조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생 김재성(22)씨는 "지난 총선에서 민주노총이 주축이 된 민주노동당을 지지했었는데 이번 사태로 너무 실망했다"며 "다음 총선에서는 민노당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들도 노동계 비판에 가담했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는 이날 논평을 내고 "노동자 권익과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해 민주주의를 선봉에서 주창하던 이들이 민주적 절차를 완전히 무시한 채 집단난동을 벌인 것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며 "기아차 사태 등 일련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한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강경 일변도의 투쟁노선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이병훈 노동위원장도 "노조가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나 효과가 있던 투쟁 방식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사태로 여실히 드러났다"며 "예전에 사회 민주화, 사회적 약자 보호 등에 앞장서던 노조가 조직원·계파 중심주의로 변질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노동계 스스로 먼저 반성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일었다. ‘노동자’라는 ID의 네티즌은 "민주노총이 거대한 조직으로 발전하면서 권력화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반성하고 스스로 자책하자"고 촉구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도 "같은 노동 운동계에서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일어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한다"며 "철저한 반성을 통해 노동운동의 도덕성과 민주성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기해기자 shinkh@hk.co.kr
■ 월말 대의원대회 재소집/"노사정 대화 복귀와 위원장 재신임 연계"
민주노총이 1995년 출범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98년 노사정위원회 참여 결정과정에서도 내부 갈등은 있었으나 이처럼 심각한 대립양상은 아니었기 때문에 노동계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문제는 노사정 대화복귀를 둘러싼 민주노총 내 제 정파 간의 인식차가 너무나 크다는 점이다. 지금으로서는 내부 균열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별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 우선 강경파들은 현 지도부를 장악한 국민파를 현단계에서 제지하지 않을 경우 노사정 대화 복귀가 성사되면서 여론의 지지를 얻어 민주노총을 완전히 장악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국민파로서는 강경파에 더 이상 밀리면 민주노총 지도권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 다수파인 국민파는 힘으로 밀어 부치면 노사정 대화복귀를 성사시킬 수 있는 입장이다. 그러나 강경파가 탄탄한 조직과 투쟁력을 갖춰 무조건 숫자로 밀어 부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첨예한 갈등 속에서 강경파는 일단 이 위원장 등 지도부 사퇴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 위원장은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신상발언 등을 통해 사퇴를 시사하는 언급을 해 강경파는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질 것이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강경파가 민주노총에서 탈퇴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예상해볼 수 있다. 이렇게까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강경파는 선명성을 내세우기 위해 강경투쟁을 주도하며 노사관계를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민주노총 집행부는 이달 말 임시대의원대회를 재소집, 노사정 대화복귀 안건과 이 위원장의 재신임안을 함께 상정·처리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임시대의원대회 무산은 특정 분파조직의 폭력행위로 인해 공조직이 유린된 것으로 위원장이 그냥 물러날 이유가 없다"며 "노사정 대화복귀와 위원장의 재신임 투표를 함께 상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 대의원대회 폭력난동 세력은/ 汎좌파 연대 ‘전노투’
1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폭력난동으로 노사정 대화복귀 안건을 무산시킨 핵심세력은 ‘노사정 담합 및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 전국노동자투쟁위원회’로 알려져 있다.
이 조직은 노동자의 힘, 평등연대, 노동의 미래를 여는 현장연대, 기아 현장의 힘 등 현장계파조직과 사회보험노조 현장조직, 해직자그룹인 전국해직자복직투쟁위원회 등 20여개 계파와 조직으로 구성된 연대그룹이다. 이들은 지난해 8월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의 노사정 대화 복귀 움직임을 개량주의로 규정하고 공동전선을 형성하기 위해 조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성향은 대체로 현장 내 강경투쟁을 이끄는 좌파노선을 지향하고 있다. 특히 현장 조직인 노동자의 힘은 "노동운동의 선진부대가 정치적으로 결집하는 새로운 노동자 정치조직"으로 스스로를 규정할 만큼 현장 조직 내에서도 가장 강성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전노투에는 전국대학생 공동행동, 노동해방 학생연대 등 좌파학생운동권 그룹도 소속돼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단상을 점거하는 등 극단적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전노투 조직원 100여명은 이날 임시대의원대회에 앞서 오후 1시께 집회를 열어 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전노투와 연관성을 맺고 있는 조직으로 민주노총 내부의 범 좌파가 있다. 중앙파와 현장파로 불리는 이들은 지난해 2월 선거 당시 이 위원장이 이끄는 온건조직 국민파에 맞서 범 좌파 그룹을 형성했다. 중앙파는 전임 단병호 위원장 등 금속연맹과 공공연맹 강성그룹이 주축이며 현장파에는 노동자의 힘과 현대자동차 핵심 현장조직인 민투위가 속해 있다. 과거 민중민주(PD)계열에서 출발한 이들은 대체로 자본과의 대립적 노선을 지향하는데, 공식조직인 중앙파보다 현장 노동계파조직으로 구성된 현장파가 더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민족민주(NL)계열에 뿌리를 둔 국민파는 민주노총 내 최대계파로 대중적 노동운동을 강조하고 있다. 노사정 대화복귀에 대해 범 좌파가 노동운동을 약화시킬 개량주의나 협조주의로 보는데 반해 국민파는 장외투쟁과 병행해야 할 주요한 전술로 인식하고 있다.
정진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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