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변호사 1,000명 배출 시대를 맞은 지 두 해도 채 지나지 않아 우리 법조 시장은 변호사 취업난이라는 전례 없는 격변 상황을 겪고 있다.
사실 과거 법조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그리 곱지 않았다. 현 정부가 사법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때문에 대다수 국민들은 현재의 법조 시장을 법률 서비스 개선에 대한 기대감과 법조계의 특권 축소라는 긍정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분명한 것은 현 시대가 요구하는 사법 개혁이 대국민 서비스의 질과 국가 경쟁력 제고라는 대명제를 전제로 할 때 비로소 명분을 갖는다는 점이다. 이 중에서 대국민 법률 서비스 개선 부분은 이미 변호사 대량 배출로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요직에 있던 주요 판검사들이 개업을 포기하고 기업 법무팀 소속 변호사로 전직하는 데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과거 우리 법조계는 전관예우 관행을 통해 전직 판검사들에게 개업시 상당한 특혜를 주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특혜가 거의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전직 판검사들은 기업의 사내 변호사라는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사법부의 핵심 인력이 기업의 시녀로 전락한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 법조 시장의 국가 경쟁력 제고라는 측면에서 결코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된 우리나라의 국제 통상 분쟁은 2002년 4건, 2003년 7건 등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소송의 대부분을 국내 변호사가 아닌 외국의 변호사들이 담당하고 있다.
결국 국내 기업들의 이익뿐 아니라 국익에도 대단히 중요한 분쟁의 대부분을 외국인 손에 맡겨 놓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유능한 전직 판검사들이 기업의 사내 변호사로서 기업 법무를 습득, 전문성을 제고함으로써 기업과 국가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나서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현재 우리 법조인 양성 시스템으로는 이러한 전문 법조인을 대량 배출해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현직 변호사들은 스스로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투자하기보다는 보다 많은 소송 사건을 수임하는 데 비중을 두고 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로스쿨(법학대학원) 제도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전문 법조인이 배출되기까지는 최소 10년 이상은 걸릴 전망이다.
따라서 국내 기업들은 앞으로도 국제 소송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외국 변호사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볼 때 법조 경험이 풍부한 유능한 전직 재조 법조인들이 기업의 사내 변호사로서 기업 실무를 습득하는 것은 우리 법조 시장 전반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도 중요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이미 선진 각국에서는 기업들이 사내 변호사를 통해 예방적 차원에서 법률 분쟁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있다.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처럼 대륙법 체계를 택하고 있는 모든 나라에서도 공통된 현상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최근 입법을 통해 기업의 법적 책임을 대폭 강화한 바 있다. 증권집단소송법이나 제조물책임법 등의 제정을 통해 1건의 소송만으로도 대기업이 하루 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어쩌면 우리 기업들이 유능한 전직 판검사를 영입하고자 하는 이유는 생존 전략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의 경우에는 1,000명 가까운 사내 변호사를 두어 소송에 따른 비용을 최소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도 기업들의 사내 변호사 제도 확대는 당연하고%D도 바람직한 추세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일방적인 비판은 자칫 일부 부작용을 우려해 전체적 효과나 시대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편협한 시각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기업소송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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