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정책과 통화(금리)정책, 환율정책 등 핵심 거시정책 수단들이 서로 마찰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적어도 상반기까지는 거시정책기조를 ‘부양’쪽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재정 통화 환율 등 개별 정책들이 정교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해 오히려 민간부문에 짐을 안겨주는 부작용까지 낳고 있다.
정부의 경기회복 구상에는 기본적으로 ‘저금리 기조’가 깔려 있다. 그러나 경기진작을 위한 재정확대정책이 연초부터 금리폭등을 유발하는 역작용을 낳고 있다.
장기금리지표인 3년물 국고채 유통수익률은 작년말 3.28%에서 1월말 4.06%로 무려 80bp(1bp=0.01%포인트)나 뛰었다. 콜금리 첫 인하 직전인 작년 8월초 수준이다. 두 차례(8월, 11월)에 걸친 콜금리 인하효과가 한 달만에 사실상 증발해버린 셈이다.
일차적 원인은 정부가 재정지출 확대를 위해 국채발행물량을 한꺼번에 늘렸기 때문. 1월 8조원 국채발행에 이어 2월에도 5조원의 재정증권(3조원 국채별도)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서 채권시장은 갑자기 늘어난 공급물량에 값이 폭락(채권금리상승)하게 된 것이다.
경기를 부양하려면 재정지출을 늘려야 하고, 재정지출을 늘리려면 국채발행이 불가피하지만, 결과적으로 재정팽창정책이 저금리 기조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재정정책과 금리정책이 서로 마찰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환율정책도 금리정책과 마찰가능성을 내포한다. 최근 금리급등 배경엔 환율급락 방지를 위해 정부가 외환시장안정용국채(환시채) 발행을 늘릴 것이란 우려감이 깔려 있다. 실제로 지난달말 원·달러환율이 1,030원 밑으로 떨어지자 채권시장에서 환시채 발행확대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금리상승폭이 커지기도 했다.
금년도 전체 국채발행물량 59조4,000억원 가운데 환시채는 21조9,000억원. 그러나 위안화 절상 등 굵직한 원·달러 환율 하락 요소를 감안할 때, 환시채 발행은 더 늘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환시채 발행 확대는 분명 환율급락을 막아 경기회복을 지원하겠다는 취지이지만, 그럴수록 시중금리는 더 오르는 부작용이 빚어지는 상황이다.
시장금리 상승은 벌써부터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한 시장관계자는 "금리상승으로 일부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계획을 취소하거나 미루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채발행확대(재정팽창정책)가 이자율을 상승시켜 민간자금조달과 투자를 힘들게 하는 전형적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LG투자증권도 2일 보고서를 통해 "실질적 경기회복조짐이 나타나기도 전에 먼저 금리가 급등하고 있어 정부는 이런 구축효과발생을 최대한 억제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재정지출확대와 환율안정책이 금리상승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막으려면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더 낮춰 장기금리를 좀 끌어내려줘야 한다는 입장. 하지만 한은은 추가금리인하는 실효도 적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시각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경제회복을 위해 올해 재정-통화-환율정책간 ‘정책조합(policy mix)’의 극대화에 주력하겠A다는 계획을 여러 차례 천명한 바 있지만, 현재로선 조합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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