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부자가 됐다. 2일부터 발표되고 있는 2004년 결산 결과, 국내 은행들은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사상 최대의 순익을 건져냈다. 14개 시중·지방은행이 모두 이익을 남기는 ‘전 은행 흑자’ 대기록도 11년 만이다.
은행이 망가지면 나라경제가 휘청대고 결국 국민들이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법칙은 이미 환란을 통해 뼈저리게 경험한 터. 그래서 지난해의 알토란 같은 은행영업 성과는 결국 국가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까지 이어진다.
은행들이 어떻게 많은 순익을 남길 수 있었는지 한번 짚어보자. 첫번째는 예대수입(예금·대출이자의 차액)의 증가다. 자금수요 부진으로 대출이 별로 늘지 않았고 예금도 수익률을 좇아 제2 금융권 등으로 꽤나 이동했음에도 은행들이 예대수입을 더 올릴 수 있었던 비결은 마진폭의 확대, 즉 예금이자는 좀 덜 주고, 대출이자는 좀 더 받은 데 있다.
두 번째는 수수료 인상이다. 현금인출이나 송금할 때 혹은 현금서비스를 받을 때 내는 이런저런 ‘생활 수수료’를 알게 모르게 올림으로써 순익을 크게 늘렸다.
‘은행이 서민을 홀대한다’거나 ‘은행이 공익성을 망각했다’는 식의 케케묵은 얘기를 다시 꺼낼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은행수익 증대가 결국 고객의 비용증대를 통해 이뤄진 것이라면, 그래서 은행과 기업·개인이 ‘제로 섬’게임을 벌이는 구도라면, 외환위기 이후 당연시 되어온 ‘은행이익=국민경제이익’이란 공식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
2005년 ‘은행전쟁’이 화두다. 하지만 말만 비장할 뿐, 새 병법이나 새 무기는 별로 안보인다. 이 전쟁이 또다시 고객의 비용부담으로 은행순익만 늘리는 식으로 전개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성철 경제과학부 기자 sclee@h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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