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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세상읽기/ '다이하드3'의 난해한 퀴즈 동양의 옛 셈법으로도 '척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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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세상읽기/ '다이하드3'의 난해한 퀴즈 동양의 옛 셈법으로도 '척척'

입력
2005.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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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화 ‘다이하드3’에서 악당은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주인공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과 대결을 벌인다. 그 중에는 저울 폭탄의 폭발을 막기 위해, 저울 위에 4갤런(1갤런=약 3.78ℓ)의 물을 올려 놓아야 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주인공에게는 3갤런과 5갤런 들이 통만 주어져 있기 때문에, 관객들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영화의 주인공은 전지전능한 만능 해결사이다. 3갤런과 5갤런 통만으로 4갤런을 만들기 위해 우선 5갤런 통을 가득 채운 후 3갤런 통에 따라내어 2갤런이 남도록 한다. 그리고 3갤런 통을 비운 후 2갤런의 물을 붓는다. 이제 3갤런 통에는 1갤런이 더 들어갈 수 있다. 마지막 단계로, 5갤런 통을 가득 채운 후 2갤런이 들어있는 3갤런 통을 채우면, 5갤런 통에는 4갤런의 물이 남는다.

퍼즐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이하드3’의 상황은 기름이나 간장이 모자라 이웃끼리 나눠 쓰던 시절에 실생활에서도 발생하곤 했다. 일본인 요시다 미츠요시(吉田光由)가 지은 ‘진겁기(塵劫記)’에는 ‘기름 나누기 방법’이 수록돼 있다. 예를 들어 한 말(10되)의 기름이 들어 있을 때, 7되 들이 통과B과 3되 들이 통을 사용해 5되를 만드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진겁기’에 제시된 해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3되 들이 통을 채워 7되 들이 통에 3번 부으면, 7되가 채워지고 나머지 2되는 3되 들이 통에 남게 된다. 이제 7되 들이 통을 비운 후 3되 들이 통에 남아 있던 2되를 7되 들이 통에 붓는다. 그리고 3되 들이 통으로 7되 들이 통을 한 번 더 채우면 5되가 된다.

‘진겁기’는 일본인들이 자랑하는 수학책이지만, 우리나라 수학의 자부심을 세워주는 역사 속의 일화도 있다. 조선 숙종 때, 한양에서 중국과 조선의 수학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중국 수학자 4인방 중의 한 사람이던 %C허궈주(何國柱)는 간단한 방정식 문제로 조선의 수학자들을 시험했다.

"360명이 은을 1냥8전씩 낸다면 그 합계는 얼마가 되겠소? 또 은 350냥이 있다고 할 때, 쌀 1가마니의 값이 1냥5전이라면 몇 가마니를 살 수 있겠소?" 대적하던 조선의 수학자 홍정하는 쉽게 답을 말했다. "첫 번째 문제의 답은 648냥이고, 두 번째의 답은 234가마니입니다" 그러자 허궈주는 한 수준 높은 문제를 냈다. "크고 작은 두 개의 정사각형이 있습니다. 두 정사각형의 넓이의 합은 468평방자이고, 큰 정사각형의 한 변은 작은 정사각형의 한 변보다 6자 길다고 할 때 두 정사각형의 변의 길이는 각각 얼마이겠소?"

큰 정사각형과 작은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를 각각 x, y로 놓으면 x2+y2=468이므로, 미지수가 x, y 두 개이고 최고차항이 2차인 연립이차방정식이 된다. 당시 홍정하는 나뭇가지 몇 개를 능숙한 손놀림으로 움직이더니 마침내 "큰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는 18자이고, 작은 정사각형의 한 변은 12자입니다"라고 답했다.

깜짝 놀란 허궈주에게 홍정하는 "이런 방정식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라면서 나뭇가지로 계산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계산을 위해 쓰이는 나뭇가지를 산목(算木)이라고 한다. 원래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지만, 조선의 수학자들은 산목을 늘어놓고 계산하는2 고유한 방법을 개발했다. 허궈주는 홍정하의 실력에 감탄하면서 자신에게도 수학 문제를 내보라고 제안했다. 홍정하가 조금 어려운 문제를 내자 당황한 허궈주는 "내일 이 문제를 풀어 답을 보여 드리겠다"고 하고는 물러갔다고 한다.

수학책을 보면 서양 수학자 일색이어서 수학이 서양 중심으로 발전돼 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수학사를 살펴보면 동양에도 괄목할 만한 수준의 수학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동양에서는 수학적 원리의 일반화, 추상화 작업에 우선 순위를 두지 않았다. 때문에 편리한 계산법에 머무르고 더 높은 수준으로의 이론화가 잘 이루어지지 못한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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