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인 줄 알았지만 영혼이라도 팔아 취직하고 싶었습니다."
31일 새벽 광주지검 앞. 돈을 주고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 입사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생산계약직 김모(29)씨는 고개를 떨군 채 "죄송하다"는 말만 연신 토해냈다.
김씨는 1995년 광주 인문계 고교를 졸업한 뒤 직업훈련소를 거쳐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착실하게 직장생활을 했다. 하지만 지난해 초 이 업체가 경영난을 맞으면서 해고 당했고 이후 막노동판을 전전해야 했다. 아버지가 5년 전 직장5을 그만 둔 뒤 팔순의 할머니와 부모님을 혼자서 부양해 온 김씨에게 돈은 늘상 부족한 것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젊은 나이에 변변한 직장도 없이 일거리를 찾아 떠도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한심스러워 걸핏하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러던 중 김씨는 지난해 5월 고졸 출신에게는 최고의 직장이라는 기아차가 생산계약직 채용공고를 내자 주저 없이 입사지원서를 썼고 평소 알고 있던 노조 대의원 조모(35)씨에게 500만원을 건넸다. 아버지에게 "고정적인 일을 해 보고 싶다"고 부탁해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이었다. 김씨는 "구직자 사이에 기아차에 들어가려면 돈을 줘야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며 "자격요건도 되고 실력도 믿었지만 나보다 똑똑한 친구들이 돈을 주지 않아 떨어지는 것을 보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김씨의 입사성적은 132명 중 4등으로 매우 우수했다. 지난달 30일 구속된 노조 대의원 조씨에게 돈을 건넸지만 인사서류상 추천자란은 비어 있어 조씨가 돈만 받고 인사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씨는 "입사 적격·부적격을 떠나 돈을 건넨 것에 대해 ‘일반적인 관행이며, 청년실업이 심하니 용서해달라’는 식으로 변명하고 싶지 않다. 이제라도 훌훌 털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의 아버지는 "아들의 잘못은 분명하지만 일하고 싶은 아이에게 일자리 하나 제대로 마련해 주지 못한 내 자신과 이 사회가 원망스러울 뿐"이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한편 기아차 노사는 1일 광주공장에서 김익환 사장과 박홍귀 노조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노사 공동 사과문을 발표했다. 기아차 노사는 "사장, 노조 위원장, 지역인사 대표를 포함해 9명으로 구성되는 ‘기아차 혁신위원회’를 구성, 도덕성 회복을 위한 자정운동과 잘못된 관행의 철저한 타파, 문제점 보완에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광주지검은 지난해 생산계약직 채용 당시 최종 인사결재권을 갖고 채용과정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기아차 전 광주공장장 김모(56)씨를 재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채용사례금 수수와 관련된 수사는 일단락 짓고 정치인 등 외부 유력인사들의 채용청탁 부분에 수사력을 모을 계획이다.
안형영기자 ahnhy@hk.co.kr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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