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됐다. 지난 달 27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세계 평화의 섬 지정 선언문’에 서명하는 순간 제주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뭉클했다. 도민들이 그토록 열망해 마지않던 일이 실현됐기 때문이다.
제주도민은 왜 ‘평화의 섬’ 꿈을 품어왔던가. 그것은 한국전쟁 발발 전 최소 2만5,000명(정부 보고서에 따르면)의 주민이 희생된 4·3사건의 아픈 상처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주도민들은 이 응어리진 역사를 푸는 한 상징으로 평화의 섬을 염원해 왔다.
평화의 섬 구상은 1991년 동서화해 분위기 속에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 간 정상회담이 제주도에서 개최된 것이 첫 계기가 됐다. 이어 96년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 2004년 7월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등 제주도는 정상회담의 단골장소가 됐고, 장쩌민, 주룽지, 후진타오 등 중국 지도자들도 제주를 찾아 관심을 보임으로써 구상은 더욱 구체화했다. 2003년 발효한 제주국제자유도시 특별법의 발효로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제주의 자연과 문화는 평화로움 그 자체이다. 한라산과 300여개 오름의 모습은 평화의 곡선이며, 돌하르방도 수호신으로서의 위엄과 함께 넉넉함과 평화로움을 느끼게 해 준다. 도둑과 거지와 대문이 없는 삼무(三無)는 평화정신의 뿌리다. 몇 해 전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제주도를 가리켜 1만8,000여 신들이 사는 ‘신들의 천국’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신들이 이처럼 많았던 것은 신들끼리도 평화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제주도가 ‘세계평화의 섬’이 된 것은 단순히 평화를 사랑하고 원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평화를 잃어버렸던 아픔을 극복하고, 평화에 대한 비전을 가꾸어보자는 염원이 이룬 결과다. 노 대통령도 지적했듯 제주도민들은 4·3문제 해결을 과거사 정리의 보편적 기준인 진실과 화해를 통하여 승화시키는 모범을 보였다. 스포츠 경기에 이긴 것도, 보상금이 나온 것도 아닌데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던 날 도내 곳곳의 생맥주집과 음식점들이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며 기뻐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제주도는 이런 도민의 염원과 국가의 지원약속을 토대로 ‘세계평화의 섬’에 걸맞는 사업 및 활동계획을 세우고 있다. 제주도를 평화를 논의하고 협상하는 평화외교의 중심지로, 제네바와 같은 국제회의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컨벤션센터와 숙박시설이 완비된 제주도는 이미 수 차례 정상외교 및 대규모 국제회의 장소로서 적합성을 검증받았다. 올 6월 세번째 열리는 제주평화포럼에는 경제포럼을 추가, 중국의 보아오포럼 수준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남북국방장관 회담과 남북평화축전을 성공적으로 치렀듯 제주도는 세계 유일의 분단체제인 남북한의 교류와 협력의 중개지 역할도 할 수 있다.
제주도는 올해 서귀포에 세계정상의 방문을 기념하는 제주국제평화센터를 완공하고, 2006년에는 평화관련 연구 및 활동을 전담할 동북아평화연구소를 설립할 예정이다. 아울러 평화통일 관련 정부기구와 국제기구를 유치할 계획이다. 노 대통령은 서명식에서 "제주도를 생각하면 마음이 푸근하다." 고 말했다. 대통령뿐 아니라 모든 내외국인이 푸근한 평화의 감정을 갖도록 하는 것 또한 ‘평화의 섬’의 역할일 것이다.
김태환 제주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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