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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光化門과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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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光化門과 광화문

입력
2005.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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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복원사업이 엉뚱한 곳에서 바람을 맞고 있다. 일인 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그렇게 찬탄하고 애석해한 광화문에 현판을 복원해 달기 위해서는 조선시대 문화전통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지금의 한글현판은 바꿀 수밖에 없다. 현판 교체는 전문가들의 집단인 문화재청에서 알아서하면 그만이련만 비전문가들도 할 말이 많은가 보다.

이의는 대체로 두 집단에서 제기된다. 하나는 한글현판을 내리는 것이 그것을 쓴 박정희를 폄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이는 문화재 복원?8사업을 정치행위로 볼 뿐, 한글현판이 복원되는 경복궁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은 외면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이들은 한글 국수주의자들이다. 오래 전 여성단체에서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이긴 해도 여자니까 (비판적)지지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논의가 있었던 것처럼, 이 한글 국수주의자들은 현판은 ‘광화문’이어야지, ‘光化門’이어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한자가 한국의 글자라는 것을 애써 부정한다. 한자는 중국 글자이므로 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한자를 이 땅에서 박멸하는 것이 우리의 말글살이를 윤택하게 하는 길이라고 믿는 듯하다. 한자가 외국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의 문화유산이 아니고 우리의 글자가 아니라는 발상은 매우 이상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종교는 비교적 자생적인 샤머니즘, 대종교 등이 있을 뿐, 불교도 천주교도 개신교도 한국 종교로서 위상을 가질 수 없다.

인류학자 랄프 린튼은 어떤 사회건 자생적 문화요소는 10% 정도 밖에 없고 나머지는 다른 사회에서 차입, 전파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문화자산은 원래 그 사회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여부가 아니라, 그 사회에서 그것이 얼마나 유효 적절하게 사용돼 왔느냐에 따라 정의되는 것이다. 문화자산에 대한 인식은 한글 국수주의자들보다 한의사들이 훨씬 전향적이다. 한의사들은 한의학을 한의학(漢醫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뿌리가 본초학을 발전시켜 온 중국에 있음이 명백하지만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의 노력이 말해주듯이 한의학은 한국인의 특성에 맞추어서 사용되고 발전해왔으므로 ‘韓醫學’이라는 것이다.

한자는 어떨까. 우리 조상들은 한자에 우리의 음가를 입히고 천년이 훨씬 넘는 기간 우리의 언어생활에 활용해 왔다. 그러므로 한자는 우리 글자이고 한의사의 표현방식을 차용하자면 ‘漢字’가 아닌 ‘韓字’다.

우리의 말글살이는 한글과 한자라는 두 가지 우수한 문자체계로써 축복 받고 있다. 한글이 우수한 표음문자이고 한자가 우수한 표의문자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둘 다 조금씩 단점이 있다. 한글의 단점은 그것이 맥락의존적이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항구매장’이라고 하면 영원히 파묻는다는 말인지, 항구에 있는 상점이라는 말인지 맥락을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특히 우리말은 한자를 토대로 한 것이 많기 때문에 맥락 없이 한글단어만 보면 그 뜻을 모를 경우가 허다하다. 또 비슷한 모양의 글자가 많아 주의하지 않으면 혼동하는 일이 많다. 이를테면 도로 표지판에 쓰인 ‘정주’와 ‘청주’는 매우 비슷해 보인다. 한글의 단점은 곧 한자의 장점이다. 그러나 한자에는 획이 많은 것들이 많고 배우고 쓰는데 시간이 많이 든다. 그럼에도 한자에는 단어의 뜻을 쉽게 알게 해주고, 조상의 생각에 접근하는 길을 열어주며, 한자문화권의 나라들과 쉽게 교류하게 해 주는 기능이 있다.

한글과 한자는 우리의 언어생활을 지탱하는 두 바퀴다. 그 중 하나의 바퀴가 원산지가 외국이라고 해서 영원히 떼어 버리고 사용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은 문화빈곤화를 자초하는 일이다. 또한 전파된 문화요소가 사회의 문화전통을 만들어 간다는 문화의 일반성질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동인 충남대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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