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예술가에게 정신적 빵 같은 금언이다. 인생은 유한하지만, 예술적 성취와 보람에 인생을 걸 만하다는 의미다. 본디는 다른 말이었다는 이설도 있다. 처음에는 ‘인생은 짧고, 예술에의 길은 멀다’였다는 것이다. 생산자로서 예술가의 삶이 고달프다는 현실적 고뇌를 드러내는 말이다. 영어에서는 ‘art’가 ‘예술’과 ‘미술’ 두 가지로 같이 쓰인다. 유추하자면 고대 서양의 대표적 예술 장르는 미술이었고, 미술인들의 삶은 예부터 곤궁한 듯하다.
■ 우리 미술가의 삶도 고달프다. 한국전업미술가협회가 지난해 조사한 전업미술가 실태를 보면, 궁핍의 정도가 심각하다. 이 협회는 미술작업만으로 생계를 해결하는 프로작가 모임이다. 회원 600여명 중 83%가 대졸이며, 석사 이상도 41%인 고학력 집단이다. 소득은 89%가 4인 가족 최저 생계비인 월 105만원에 크게 못 미친다. 96%가 창작수입으로는 가족생활 유지가 안 되므로, 다른 가족의 수입에 의지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이들 중 87%가 미술가로서 높은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점이다.
■ 가난한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3월부터 미술은행이 설립된다. 정부가 미술품을 사서 관공서·철도역 등 공공건물에 빌려주는 제도다. 미술계가 10여년 전부터 요청해 온 이 제도는 1934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됐다. 정부지원과 기부금 등으로 운영되는 영국 미술은행은 작품을 사주고 주요기관에서 순회전시도 한다. 작품구입에 연 50억원 이상 투자하는 프랑스 미술은행은 가장 중요한 수집가 역할을 한다. 독일 호주 등도 비슷하다.
■ 미술은행은 매해 공모제와 추천, 현장구입 등으로 300점가량의 작품을 산다. 구입방법을 놓고 각자의 주장이 다르다. 작가는 직접구입을 더 많이 하라고 주장한다. 화랑은 오히려 15%인 현장구입 비율을 확대하라는 입장이다. 미술시장의 장기불황을 견뎌 온 화랑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국내외 미술경쟁력을 키우려면 현장구입 비율을 높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러나 미술은행 운영보다 더 시급한 게 있다. 국민이 옷 등의 명품보다 예술품에 더 애정을 갖는 일이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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