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제헌 의회 총선이 의외로 순조롭게 마무리되자 시아파는 벌써 축제 분위기에 접어들었다.
바그다드의 시아파 거주지역인 사드르시티에선 31일 수 만명의 시아파 주민들이 쏟아져 나와 꽃을 뿌리고 시아파 깃발을 흔들며 ‘이등 국민’굴레를 벗어지게 된 데 감격했다. 이들은 그랜드 아야툴라 알 시스타니 등 지도자의 사진을 앞세운 채 온종일 거리를 행진하며 기세를 올렸다.
시스타니도 "나는 이란 국적이어서 투표를 못했지만 많은 국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투표장에 나와 감사한다"고 기뻐했다. 시아파 성지인 카르발라의 투표율이 90%를 넘는 등 시아파 투표율은 7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쿠르드족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자이툰 부대가 주둔 중인 아르빌의 한 쿠르드족 주민은 "이젠 정말 사담 후세인 시대가 간 게 실감난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이번 선거로 쿠르드족의 북부 지배권이 굳어지는 모습을 보이자 타이프 에르도간 터키 총리가 직접 미국을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수니파 거주 지역인 살라흐 앗 딘 등 중부 3주의 투표율은 극히 저조했고, 거리엔 인적마저 드물었다. 후세인의 고향 티크리트의 수니파 주민 카이스 유시프는 "선거라는 게 사실은 수니파를 약화시키려는 미국의 계략"이라며 "가족과 친지 모두 투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라크 선관위에 따르면 전체 투표율은 60~75% 정도로 추정된다. 해외 동포 투표율은 94%에 달했다. 뉴욕타임스는 "예상보다 높은 투표율은 미군의 적절한 보안 조치로 저항세력이 힘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집계는 수(手)개표로 진행되고 있으며, 전력난을 겪는 일부 지역에선 촛불을 켜놓고 개표 작업을 강행하고 있다. 개표장 주변은 추가 테러에 대비,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지만 유혈사태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최종 결과에선 여성 표가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여성들이 유권자의 절반이고, 의원의 3분의 1을 여성으로 할당한 만큼 목소리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여성들은 특히 이란에서의 여성 지위 저하를 들어 신정(神政)에 반대하고 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 시스타니 ‘최대 승자’/ 시아파 UIA 좌지우지 이란식 신정국가 우려
시아파의 압승으로 끝난 이라크 총선 후 세계의 관심은 온통 이라크의 시아파 정신적 지도자 아야툴라 알리 알 시스타니(75·사진)에 쏠려 있다. 공식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는 시아파 내 막강한 영향력으로 전후 이라크 정치일정을 주도해 왔다.
미군이 난색을 표명했는데도 30일 총선이 강행된 것도 그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 이란식 신정주의자라고 의심하는 미국이 어쩔 수 없이 그의 뜻을 수용한데서 시스타니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그가 이번 총선을 계기로 또 하나의 큰 날개를 달았다. 이번 선거에 참여한 시아파 최대 정파이자 제1당이 유력시되는 통일이라크연합(UIA)은 절대적으로 시스타니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한 분파로 참여하고 있는 이슬람혁명최고평의회(SCIRI)의 압델 아지즈 알 하킴 의장이 공천 1번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이 역시 시스타니의 ‘윤허’가 없었다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알 하킴 뿐 아니라 UIA가 정한 공천자는 사실상 시스타니가 지명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차기 과도정부의 총리가 누가 될 지 모르지만 시스타니는 제헌과정에서 이라크 정국을 좌우하는 정치적 날개까지 확보한 것이다.
시스타니가 이번 선거의 ‘보이지 않는 최대 승자’로 부상하면서 미국도 더욱 바빠졌다.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이라크가 제2의 이란이 될지, 민주적 세속국가로 탈바꿈할 지가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란 국적의 시스타니는 지금까지 이란식 신정체제를 도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시아파 지도자들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헌법에 기초한 민주적 정부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시아파가 정치적 약자였을 때의 발언이다. 이제 권력을 쥔 시아파가 어떤 속내를 드러낼 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시스타니에 주목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 부시 "성공적"… 각국 "일단 긍정"
이라크 총선을 지켜 본 세계 각국은 대체적으로 "성공적"이라는 %C평가를 내리며 조심스럽게 향후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미 정부 관리들은 이라크 총선 결과에 고무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총선 후 상황에 대한 성급한 기대감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30일 백악관에서 성명을 발표, 이번 총선을 ‘완벽한 성공’이라고 평가하면서 "미국민을 대표해 이라크 국민이 위대하고 역사적인 성취를 이룬 것을 축하한다"고 환영했다.
부시 대통령은 특히 "세계는 중동의 중심에서 나오는 자유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고 말해 취임사에서 밝힌 ‘자유의 확산’메시지가 이번 선거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는2 점을 부각하려 했다.
CNN 방송은 이라크인들이 투표 잉크가 묻은 손을 내보이고 춤을 추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높은 투표율이 회의론자들을 놀라게 했다"고 전했다. 부시 행정부는 이런 모습이 되려 1만5,000명의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군 일정을 제시하라는 압력을 거세게 할 것을 염려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이런 우려를 반영한 듯 부시 대통령과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은 이라크인들이 치안을 감당할 때까지 미국의 지원이 계속될 것임을 강조했다.
유럽 각국의 지도자들도 이번 총선을 높이 평가하며 지원을 약속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이라크 총선은 국제 테러리즘의 심장부에 일격을 가한 것"이라며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들을 칭찬했다. 특히 이라크전을 앞장 서서 비난했던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총선에 만족하며 이라크 재건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이라크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동과 아랍권 국가들은 겉으로는 "이라크가 민주주의를 향한 일보를 딛었다"고 환영했지만, 시아파의 지배 세력 등장이 역내에 몰고 올 후폭풍에 대해 불안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쿠르드족의 득세를 우려하는 터키에 대해선 더글라스 페이스 미 국방부 차관이 직접 달래기에 나섰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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