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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전쟁과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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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전쟁과 전투

입력
2005.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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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에서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졌다”. 세계전쟁사를 살펴보면 자주 부딪치는 패장들의 탄식이다. 전쟁만이 아니라 정치, 나아가 사람의 세상살이가 그러하다.

작은 전투에서는 이기지만 이에 자만해 더 큰 전쟁에서는 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전투에선 지지만 그것이 약이 되어 전쟁에서는 이기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전투에서 이기되 전쟁에서 지는 대표적인 예가 한나라당이다.

현재의 한나라당은 김영삼 정권 말기 이회창 전 총재가 대통령후보로 당선돼 김영삼 정권과의 차별화를 위해 당명을 바꾼 신한국당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후 2000년 총선, 2002년 지자체 선거, 그리고 각종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연달아 승리를 했다. 하다못해 탄핵 바람으로 당의 존립이 풍전등화에 놓였던 지난 해 총선에서도 130여석의 의석을 건지는 선방을 했다. 각종 전투에서는 승리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두 차례 대선 패배가 보여주듯 전쟁에서는 계속 패배하고 있다. 최근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비록 지난 총선에서는 패배했지만 한나라당은 이후 치룬 재보궐선거에서 다시 승리했다. 지난 정기국회에서도 열린우리당이 야심차게 내놓은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개혁법안을 사실상 모두 좌초시켰다. ‘개혁 전투’에서 승리한 것이다.

오는 4월에 있을 보궐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이 승리해 열린 우리당이 과반수의석을 잃게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전투에서의 승리는 다시 한번 다음 대선이라는 전쟁에서의 패배를 내장하고 있다.

요즈음의 한나라당을 바라다보면 눈물을 흘리며 뼈를 깎는 자기변신을 각오했던 2002년 대선 패배와 2004년 탄핵파동 당시의 비장함은 찾아볼 수 없다. 부패 이미지는 희석됐는지 모르지만 필패의 카드인 극우냉전주의는 그대로 남아 있다.

사실 한나라당이 4대 개혁법안에 극력 반대하고 나서 이들을 좌초시킬 수 있었던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불필요하게 국가보안법 문제에 대해 이념전쟁을 선포하고 이해찬 총리가 막말시비를 걸고 나섬으로써 한나라당에서 극우강경파가 힘을 갖게 됐던 것에도 크게 기인한다. 이 점에서 노 대통령과 이 총리의 발언은 개혁법안 통과를 막은 이적행위였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 발언이 한나라당의 강경노선을 자극, 한나라당은 역시 구제불가능한 수구정당이며 박근혜 노선이라는 것이 부친이 30년 전에 갖고 있던 극우냉전주의로부터 반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것임을 만천하에 보여주는 효과를 거두었다. 즉 한나라당이 약속해온 개혁적 보수노선으로의 변신이라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한 약속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노 대통령은 불필요한 발언들로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자극했고 이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탄핵이라는 자충수를 둔 바 있다. 그 결과 노 대통령이 고도의 전략에 의해 자극적 발언으로 탄핵을 유도한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노 대통령과 이 총리의 도발이 한나라당이 냉전적 논리에 집착하게 만들어 다음 대선에서도 패배토록 하기위한 고도의 전략이 아니었는가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갖게 된다. 다시 말해 한나라당이 전투의 승리로 자만에 빠져 자기변신을 하지 않음으로써 전쟁에서 패배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표는 연두회견에서 민생을 살리기 위한 무정쟁 정치를 선언했다. 또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당명개정을 밀어부치고 있다. 그러나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것은 아니듯이 포장만 바꾼다고 극우냉전주의가 개혁적 보수주의로 둔갑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은 포기하고 전투에서의 작은 승리들에 만족한다면 그건 한나라당의 자유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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