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학자의 연구실은 싸늘했다. 20년 묵은 집기와 책장 가득 누렇게 오그라든 책이 뿜어내는 먼지가 겨울 볕에 사금파리마냥 반짝였다. "방학엔 스팀이 안 들어와서요." 성성한 백발에도 웃음은 아이마냥 해맑다.
평생을 불모지와 다름없던 한국과학사 발굴에 바쳐온 한국외국어대 박성래(66·사학과) 교수가 2월 말에 정년퇴임한다. 대학강단에 선지 28년 만이다. 그 동안 ‘과학사서설(1979)’ 등 30여 편의 책을 내면서 과학저술상(89), 대한민국 과학기술상(90) 등을 수상하고 한국과학사학회 회장, 한국저술인협회 부회장, 한국외국어대 부총장도 역임했다. 하지만 학문 밖으로 눈을 돌린 적은 없다.
퇴임 소회부터 물었다. "시원해요. 너무 간단해서 생뚱맞죠?"껄껄 웃더니 말을 이었다. "최선을 다했어요. 수업은 1분도 빠뜨리지 않았어요. 한 학기 수강생이 200~300명이니 수업 들은 학생이 1만 명은 훨씬 넘을 겁니다. 외대 개교이래 최대라고 합디다, 하하. 그뿐입니까. 외부강연이나 기고 부탁은 거절하지 못했어요. 30년 동안 연재한 잡지도 있으니… 이만하면 쉴만하죠."
28년 동안 그가 강의를 쉰 기간은 고작 1년6개월이었?A다. 그조차도 91년 목이 아파 낸 병가였다. 그래도 미련이 남을 터. 그는 "세가지가 있다"고 했다. 책을 버려서 아깝고, 책을 못 내서 아깝고, 책을 못 써서 아깝다는 것이다. "지난달 2일 마지막 수업 때 책을 다 방출했지요. 어린이 위인전부터 언어학 이론까지 평생 모았는데 이 나이에 뭣할까 싶습디다." 하지만 연구실엔 여전히 책이 빽빽하다. 책 못 쓴 아쉬움은 힘닿는 데까지, 하지만 유유자적 해나갈 작정이다. 요즘은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출품될 저서 ‘한국사에도 과학이 있는가(98)’의 영역 작업 중이다. 출판사 사정으로 미뤘던 책 출간도 퇴임 즈음에 마무리할 생각이다.
"한국과학사 연구로 돈도 벌고 이름도 얻었으니 운이 좋은 편이지요."주위의 법대 진학 권유를 뿌리치고 57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할 때만 해도 "과학으로 나라의 운명을 개척하겠다"는 ‘거창한’ 꿈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졸업 뒤 일자리가 없어 전전하다 언론사 시험에 붙어 6년 동안 기자생활도 했단다. 학문의 갈증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미국 유학을 거쳐 과학사가로 거듭났다.
최근 이공계 위기로 화제를 돌렸더니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대학이 바뀌어야 합니다. 전공 아닌 교양중심으로 가야지요. 물리학과 나오면 모두 과학자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지요4. 영화배우 안성기도 베트남어과 나왔잖아요."
슬몃 계획을 되물었다. "목 아파서 강연은 더 안 해요. 집사람이랑 산보도 하고 영화도 보고 맛집도 다니고…." 연구실에 함께 나와있던 부인(이미혜·61)이 끼어 들었다. "아이고, 아직도 집에 있으면 공부만 해요." "무슨 소리야, 지난 주엔 영화 봤잖아." 노부부의 웃음으로 방안이 따뜻해졌다.
"진짜 마지막이네, 이놈도 떼야 하는데…." 한참이나 망설이다 닫은 연구실 문엔 ‘309호 박성래 교수’란 팻말이 아직 그대로였다.
용인=고찬유기자 jut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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