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총리가 28일 "과거분식에 대한 면책 계기를 만들겠다"고 밝힌 것은 사실상 작년 말 집단소송제 개정에 반대했던 열린우리당에 대한 압박용이다. 정부가 경제에 ‘올인’하기로 한 마당에, 기업에 족쇄로 작용할 집단소송제를 그대로 시행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경기 회복을 위해 기업투명성 제고 명분을 다소 포기할 수도 있다는 시그널인 셈이다.
이 총리의 발언 이후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정성호(법사위) 의원은 "개인적으로쓴? 반대한다"면서도 "원내대표, 정책위의장에다 총리까지 나서서 그러는데, 해줄 수 밖에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원혜영 정책위의장도 "과거 기업의 잘못된 관행이 있었더라도 여기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며 "과거분식을 정리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맞장구를 치고 있다. 이에 따라 내달 임시국회에서 개정안 통과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재계도 "기업의 기를 살려주겠다는 총리의 의지는 매우 반길만 하다"며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기업들이 이번 결정을 계기로 과거의 부담을 털고 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투명성 제고에 전념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리의 이날 발언은 과거분식 면제를 둘러싸고 쟁점이 됐던 ‘과거분식’과 ‘현재분식’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됐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과 시민단체들이 집단소송제 개정안에 강력 반대한 이유도 바로 이때문이었다.
2년 유예론은 법 시행 이전에 행해진 과거분식에 대해 2년 동안 면죄부를 주는 것이지만 면제를 하려 해도 2005년 이후에 새로 발생한 것인지, 과거에 발생됐던 것인지 돈에 꼬리표가 없는 이상 ‘출생 시점’을 못박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법사위 간사인 최재천 의원은 "정부?%A? 과거와 현재 분식을 최대한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거분식 유예를 둘러싼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많은 회계전문가들은 과거·현재 분식을 구분할 수 있는 솔로몬식 해법은 사실상 없다는 입장이다. 열린우리당 이원영(법사위) 의원은 "(총리 발언은) 그분 말씀일 뿐"이라며 "설득력 있는 과거·현재 분식 구분 방식에 대한 제시 없이 연기해주면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기업들이 앞으로 2년 동안 과거 분식을 해소하지 못하면 2년 후 또 한번 지금과 같은 논란이 일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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