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 1월29일 스페인 소설가 비센테 블라스코이바녜스가 발렌시아에서 태어났다. 1928년 프랑스 망통에서 졸(卒). 블라스코이바녜스는 파드로 바산, 레오폴도 알라스, 팔라시오 발데스 같은 작가들과 함께 19세기 말 스페인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다. 스페인 소설문학에 자연주의가 유입된 것은 1880년대 이후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의 영향 아래서였는데, 특히 블라스코이바녜스는 혁명에 대한 미련이나 남루한 환경 따위를 노골적으로 주제화해 '스페인의 졸라'로까지 불린다.
발렌시아대학에%B서 법학을 전공한 블라스코이바녜스는 일찍부터 반교회주의·공화주의에 쏠려 혁명운동에 발을 들여놓는 바람에 망명과 투옥을 되풀이해야 했다. 스페인이 공화주의에 너그러워진 시기에는 현실정치에 발을 들여놓아 국회의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삶이 파란만장했던 것과도 관련 있겠지만, 그의 문학 활동은 자주 단속적이었고 작품의 수준도 고르지 못했다. '초가집'(1898)이나 '갈대와 진흙'(1902)처럼 고향 발렌시아을 무대로 한 자연주의 작품들에서 이미 뾰족한 사회정치 의식을 보여준 블라스코이바녜스는 국제적 성공을 거둔 ‘피와 모래’(1908)에 이르러 투우에 대한 현미경적 묘사와 민중에 대한 경애를 결합시킴으로써 자연주의 사회소설의 한 정점을 보여주었다. ‘피와 모래’는 그의 또 다른 작품 ‘묵시록의 네 기사’(1916)와 함께 영화로도 만들어져 블라스코이바녜스의 대중적 인기를 크게 높였다.
문학사적으로 자연주의는 주체의식의 미성숙이나 통속성의 맥락에서 거론되면서 그리 탐스러운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졸라나 블라스코이바녜스 같은 자연주의 작가들의 정치적 실천을 되돌아보면, 자연주의 안에는 자유·평등·박애 같은 민주주의의 ‘상투적’ 가치들에 대한 고귀한 열망이 견고히 자리잡고 있었던 듯하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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