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 극복 방식에 따라 인생이 갈린다. 결코 회복하지 못할 수도, 예전 상태로 돌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역경을 딛고 일어서, 더 큰 성공을 이루는 사람도 있다. IBM의 창업자 토머스 J 왓슨(1874~1956·사진)이 그렇다. 그가 IBM을 거대한 컴퓨터 왕국으로 키울 수 있었던 힘은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련이었다.
그는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다. 자기 도취에 빠진 사람이었다. ‘전미인명사전’이 사전 등재를 위해 개인적 특징에 대한 정보를 요청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대단한 비전, 불굴의 의지, 확고한 결단력을 지녔음’. 한마디로 ‘자뻑파’였던 것이다.
고급 전자기기 개발에 매진한 것도 실은 복수심 때문이었다. 왓슨은 하버드대 에이켄 교수에게 1만5,000달러를 지원, 초고속 계산기를 개발토록 했으나 그가 이를 단독 발명품으로 발표하자, 앙심을 품고 독자적인 컴퓨터 개발에 매달렸다.
결함 많고 허영심으로 가득찬 인간이었지만 그의 경영 능력은 모든 결점을 상쇄하고 남았다. 이른바 ‘기업문화’를 가장 먼저 정착시킨 이가 바로 왓슨이다. 사원들은 입사와 동시에 금주선언을 해야 했다. 정장에 흰 셔츠를 입는 전통은 1990?%E穗? 후반까지 이어졌다. 왓슨은 ‘우리는 IBM의 동료, 모두 한 가족이다’라는 사가(社歌)를 만들어 부르도록 했다. 또 영업 할당량을 달성한 사원들을 멤버로 하는 ‘100%클럽’을 만들어 동기를 부여했다.
그는 위기일수록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0년, 그는 오히려 생산을 33% 늘렸다. 1932년에는 연매출의 6%에 달하는 100만 달러를 투자해 기업연구소를 설립했다. 엔지니어들에게는 일체의 장비를 아낌 없이 제공했다. 심지어 연구소 건너편 공장으로 이동하는 지하터널을 뚫어 추운 겨울에도 공장에 수시로 드나들며 실험을 하도록 배려했을 정도다.
이 책의 %특별함은 왓슨을 영웅으로 그리지 않은 데 있다. 왓슨은 재능도 뛰어나지만 결점도 많은, 보통 사람일 뿐이다. 때문에 지금 시련을 겪고 있는 이에게 더욱 진실되게 다가온다. ‘USA 투데이’의 명 칼럼니스트 케빈 매이니가 IBM이 최초로 공개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썼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