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빛.
구름 위 세상은 달랐다. 사위를 감싼 구름 속을 걸은 지 몇 시간. 눈꽃 터널을 뚫고 나오니 벌판엔 황홀한 빛의 잔치가 벌어졌다. 순결한 청(靑)과 백(白), 단 두 가지 색깔뿐이다. 턱은 절로 떨어지고 말은 쉽게 나오질 않는다. 오르막이 힘겨워 숨이 막혀서가 아니다. 눈 앞, 눈이 펼쳐놓은 구름 위 별천지는 그렇게 눈부셨다.
백록담을 둘러싼 산둥치가 저 앞이다. 산의 속살만 바라보며 내리 걷다가 드디어 산에서 산을 보았다. 운해 위의 하늘은 저 아래에서 보던 그 %%%C하늘이 아니다. 구름을 깔고 앉은 푸른색6은 더욱 진했고 깊었다. 영봉 위로 펼쳐진 깊숙한 쪽빛의 바다. 구름 위 한라산은 시퍼런 제주의 바다를 머리 위에 이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은 눈조각 전시장이다. 구름이 말갛게 씻어낸 산자락은 백설로 더욱 반짝인다. 다이아몬드를 수천, 수만 개 뿌려놓은 듯 거침없는 빛의 반사다. 하늘이 녹아든 설경은 푸르스름한 빛으로 그늘졌다. 진달래밭대피소 주변, 춘삼월이면 연분홍 꽃잎이 하늘거렸을 진달래의 잔가지들이 가녀린 눈꽃을 피워냈고, 작달막한 구상나무들은 진시황 무덤의 토용(土俑) 병정처럼 두툼한 눈의 %?㈎各?입고 능선 가득 도열해있다.
발 아떱×〈?구름의 바다가 눈 덮인 능선, 수풀과 모호한 경계를 지은 채 짙게 드리웠다. 선경을 떠받친 구름은 더 이상 황홀경을 주체할 수 없는지 한 자락 안개를 뭉실 피워올린다. 남쪽 산비탈로 치오르는 기세가 만만치 않다. 이러다 맑은 날씨의 귀한 백록담 구경을 놓치는게 아닐까. 굳어진 허벅지를 두들기며 산행길을 서둘렀다. 안개가 떠오르며 잠시 옅어진 구름 사이로 서귀포 앞바다가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한라산(제주)=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한라산 눈꽃여행 | 백록담 - 희뿌연 안개 걷히니 여기가 바로 仙境
%B동쪽 지역을 제외하고 유독 눈이 귀했던 겨울. 흰 눈이 펼치는 ‘마법의 세상’을 찾아 떠난 곳은 제주 한라산이다. 남한 최고봉, 민족의 영산으로 가장 아름다운 눈꽃을 자랑하는 곳이다. 산행 코스는 성판악으로 잡았다. 백록담까지 오를 수 있는 평탄한 등반길로 코스는 5·16도로 중간인 해발 750m에서 시작된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 밝힌 성판악휴게소 안은 생수, 아이젠, 간식거리를 준비하는 등산객들로 복작거렸다. 지체 없이 접어든 눈길 등산로는 수많은 발걸음으로 공고히 다져져 있다. 해가 뜨기 전이지만 산길은 밝았다. 햇빛이 없어도 잔빛을 모은 눈밭이 마치 스스로E ?F岵?뿜듯 주위를 밝히고 있다.
하얀 눈세상과 벌거벗은 나무, 그리고 나 뿐이다. 맑은 사색을 강요하는 길이다. 눈길은 소리로 걷는 여정이다. 밀가루 바스라지는 감촉이 발 밑에서부터 몸을 간질인다.
앞선 이들의 발자국을 좇아 내처 걷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덧 여명이 나무들 사이로 부챗살을 편다. 두꺼운 잎들을 콩 꼬투리 마냥 축축 늘어뜨린 굴거리나무 군락을 지났다. "어떤 잎이길래 눈 맞을 때까지 지지 않았나." 잎을 만지려 길 옆으로 발을 내딛었다가 소스라쳤다. 허벅지까지 눈 속에 푹 빠져들었다.
1시간 반 정도 이어진 산행. 조금 지루해진다 싶을 때 울창한 삼%F나%무 숲이 반겼다. 눈덩이를 한아름씩 안은 쭉쭉 뻗은 삼나무 군락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죄다 옮겨놓은 듯 이국적이다. 70년대 목재용으로 인공 조림한 숲이다. 삼나무의 가치가 크게 떨어져 원래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눈 덮인 장관이 대신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산이 깊어지면서 잔잔한 눈발이 날렸다. 곱고 마른 눈. 얼어붙은 구름이 채에 쳐져 부서져 내리는 듯 피求?. 나뭇가지 끝엔 고드름이 매달렸다. 하나 따서 한 입 오도독 깨물었다. 어린시절의 그 맛인가. 씹히는 질감은 추억 속 그것인데 왠지 입끝이 껄끄럽다. 씁쓸한 뒷맛에 퉤 퉤.
구름 속 눈꽃터널을 지나 도착한 진달래밭대피소는 백록담을 오르는 마지막 베이스 캠프다. 한라산은 야영이 금지돼 이 진달래밭대피소에 낮 12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백록담 진입이 금지된다. 이제껏 평탄하기만 했던 길은 지금부터 오르막이다. 목재 계단의 난간 너머 남쪽 산자락은 아찔한 급경사다. 007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벼랑 스키’ 장면을 찍을만하다.
포슬포슬한 눈밭을 디뎌 올라 드디어 ?%E冗臼담이?? 기대 만큼 크지 않은 분화구가 다소곳이 손바닥을 열었고 그 위로 소담스레 눈이 찼다. 둘러싼 기암절벽은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나무 난간에 걸터앉은 까마귀들이 ‘깍깍’거리며 경계를 한다. 몸 어디 한곳 까맣지 않은 곳이 없어 흰 눈의 세상에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예부터 한라산 중·고지대에 떼를 지어 사는 터줏대감들이다.
싸온 김밥으로 차갑지만 달콤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하산하는 길. 구름은 언제 올라왔는지 그 맑던 진달래밭대피소가 깊은 안개 속에 파묻혔다. 희뿌연 안개 속 백설의 세상. 꿈속을 걷듯 몽롱해졌다.
한라산(제주)=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
■ 한라산 눈꽃여행 | 산에서 내려오면- 섬·절벽·일몰 그리고 카페 '환상 해안도로'
여행은 삶의 쉼표. 제주의 급하지 않은 길은 한적함과 여유를 느끼기에 그만이다. 특히 제주의 관광동맥인 12번 일주도로를 타고 가다 만나는 해안도로는 제주 여행의 참 맛을 보여준다. 푸른 바다를 직접 잇는 실핏줄로 수려한 풍광과 함께 제주민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길이다.
용두암에서 이호해수욕장까지의 길은 제주 시민에겐 유명한 데이트 코스다. 바닷가 횟집촌을 지나면 멋진 바다풍경을 바라보는 예쁜 카페들이 줄지어 서있다. 서울 근교의 미사리를 닮았다. 중간의 도두포구는 한적한 어촌마을. 파도를 피해 마을 깊숙이 ‘골목 뱃길’을 낸 모습이 이색적이다.
하귀리와 애월을 잇는 9km 해안도로는 현무암 절벽과 코발트빛 바다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환상의 드라이브길이다. 이어 귀덕에서 다시 해안도로로 접어들면 비취빛 영롱한 바다 위에 떠있는 비양도를 만난다. 천년 전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젊은 섬’으로 중절모의 모양이다.
한경면의 용수리를 지나는 해안도로는 석양이 아름답다. 지난해 거대한 풍력발전기 4기가 들어서 이국적이다. 바다 가까이 장구 모양의 차귀도는 일몰을 더욱 황홀케 하는 주인공이C다. 다시 제주섬의 서쪽 끝 자구내포구에서 이어진 해안도로는 차귀도를 내려다보는 수월봉을 지나 일과리까지 긴 해안선을 타고 달린다.
우리나라 최남단 항구인 모슬포항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모슬포와 송악산을 잇는 해안도로는 완공 전이라 중간이 끊겨있다. 하지만 농로를 타고 이 길을 잇는 맛도 신선한 경험이다. 멀리 산방산을 배경으로 시커먼 밭을 일구는 주민들을 만날 수 있다. 길을 잃으면 어떡하냐고? 뭐가 걱정인가. 제주는 섬이고 길이 길어봤자 그 끝은 어차피 바다 아닌가. 맘을 쉬는 여행이라면 맘껏 헤매어도 좋은 법이다.
전망 좋은 송악산에 오르면 가%파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절벽위로 난 산책로가 아름답고 깎아지른 해안절벽이 절경이다.
제주의 동쪽에 이르면 신산리에서 구좌읍까지 연결되는 긴 바닷길을 만난다. 제주 해안도로의 백미가 이 길이다. 신산리-온평리 구간은 환해장성길로 현무암으로 둘러친 옛 성곽을 가드레일 삼아 달린다. 신양리에선 드라마 ‘올인’으로 뜬 섭지코지를 스친다. 성산 일출봉%0에 넋을 뺀 채 이름도 예쁜 종달리를 지나는 해안길. 바다 건너 우도의 모습도 좋지만 반대편 돌담을 두른 밭들이 층층 포개진 모습이 정겹다. 문주란 자생지인 토끼섬을 지날 때면 구좌읍의 풍력발전기가 눈에 들어온다. 제주=이성원기자
■ 여행수첩
●한라산 오르는 길
한라산을 오르는 길은 성판악, 관음사, 어리목, 영실코스 등 4가지다. 이중 백록담을 오를 수 있는 코스는 성판악과 관음사길. 성판악(9.6km)이 관음사(8.7km)보다 길지만 길이 평탄해 산행시간(왕복 8~9시간)은 오히려 짧다. 관음사 코스는 계곡이 깊고 산세가 웅장해 남성적인 한라산의 진면목을 감상할 ?%F? 있다. 어리목(4.7km)과 영실(3.7km)코스는 윗세오름까지만 오를 수 있다. 한라산은 당일 산행만 허용돼 입산시간이 정해져 있다. 11월부터 2월까지가 동절기. 성판악 코스는 진달래밭대피소에 낮 12시 까지 도착해야 백록담에 오를 수 있다. 관음사 코스는 입구에서 오전9시 이전에 올라야 한다. 백록담 정상에서는 오후1시30분 전에 하산해야 한다. 어리목과 영실코스의 등산 시작 시간은 낮 12시까지. 윗세오름에서는 오후2시 이전에 하산해야 한다. 눈길 등산에 아이젠은 필수다. 등산화에 눈이 들어가는 것을 막는 스패치도 착용해야 한다. 생수와 초콜릿, 귤 등 간단한 간식거리는 미리 챙기는게 좋다. 한라산국립공원사무소 (064)713-9950~2, 성판악지소 (064)725-9950
●쉴 곳, 먹을 곳
제주는 풍경과 어울리는 예쁜 펜션들이 많다. 중문단지 입구 감귤밭에 파묻힌 '재즈마을(www.jazzvillage.co.kr)'이 추천할 만하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고급스런 통나무집에서 은은한 재즈 음악을 들으며 자연속 별장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밤에는 군고구마 파티가 열리고 바로 옆 감귤밭에서는 감귤을 직접 따갈 수 있다. 한 꾸러미를 따서 집으로 가져가도 공짜다. (064)738-9300. 뭘 먹을까 고민된다면 해안도로변 각 마을 어촌계 해녀들이 직접 운영하는 횟집들을 들러 보자.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신선한1 해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푸짐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해녀들의 푸근한 인심은 덤이다. 온평리의 '소라의 성(064-784-6363)'도 그 중 하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