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이 전문여론조사기관인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한 ‘한국사회 신뢰도 조사’는 지난 연말(2004년 11월29일~12월11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면접조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조사대상자 표본은 인구비례에 따른 할당 샘플링 방법으로 추출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구간에서 ±3.1% 수준이다.
■ 기관별 영향력·신뢰도
한국사회의 위기는 신뢰의 위기다. 극단적 이기주의나 극한투쟁을 억제하고 공동의 이익에 기여함으로써 사회통합을 이루는 길은 신?%愍? 축적에 있다.
절대적 신뢰를 100, 완전한 불신을 0으로 해서 점수를 매겼을 때, ‘가족’에 대한 신뢰가 92점으로 가장 높았고, ‘처음 만난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가 37점으로 가장 낮았다. 또 ‘친척’(71)이나 ‘동창생’(68)과 같이 혈연과 학연으로 연결된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높은 반면에, ‘동네가게 주인’(58), 시, %B군구청 공무원’(47), 외국인노동자(46) 등 순으로 신뢰점수는 낮았다. 연고자는 신뢰하나, 그렇지 않은 경우는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사회단체나 공적기관에 대한 신뢰는 높지 않았다. 그나마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가 57점으로 가장 높았고, 이어 %C종교단체(56), 대학(55), 노동조합(53), 군(52), 대기업(52), 언론기관(52), 대통령(51) 등 순이었다. 특히 사법부(48), 행정부(46), 국회(39)의 신뢰도가 가장 낮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영향력을 역시 100점 만점으로 평가할 때는 대통령(77), 행정부(75), 언론기관(73), 국회(71), 사법부(70), 시민단체(69), 대기업(68), 종교단체(64), 군(64%), 노동조합(62), 대학(61) 순이었다. 결국 사회적 영향력이 높은 기관일수록 오히려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입법, 사법, 행정부 등 사회적 영향력이 큰 기관에 대한 불신이 유독 크다는 것은, 비유컨대 경기를 하는 선수들이 심판 판정의 ?%1ㅄ煐봉? 받아들이지 못함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힘 있는 사람과의 연고 관계에 의존해 문제를 풀어가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국회에 대한 불신이 ‘처음 만난 낯선 사람’에 버금가는 수준이라는 건 다양한 사회적 갈등과 이해를 수용할 ‘정치과정’에 심각한 기능장애가 있음을 시사한다.
‘얼마나 %B서로 믿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인가’라는 질문에는 ‘내가 사는 동네’(72), ‘내가 속한 단체’ ‘지역’ ‘내 직장이나 학교’(각 67), ‘한국사회’(55), ‘이 세상’(53) 순으로 신뢰점수가 매겨졌다. 이는 신뢰가 가족을 정점으로 동심원적으로 퍼져나가며 옅어지는 구조라는 것을 보여준다.
퍼트남과 후쿠야마가 예견했듯 신뢰를 결여한 사회는 부패와 무능, 극단적 이기주의와 사회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규칙이 적용되는 법치주의가 확립돼야 비로소 연고주의를 넘어 진정한 사회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재열(서울대 사회학0과 교수)
■ 신뢰 계층 분석/ 충청권서 신뢰도 가장 낮아 행정수도 백지화 작용한 듯
기관별 신뢰도에서는 지역에 따른 차이가 크게 두드러졌다.
특히 대전·충청권의 신뢰도는 4.3으로 전체 평균 5.1보다 크게 낮았다. 이는 가장 높은 신뢰도%B를 보인 강원도의 5.8보다 1.5나 낮은 수치다. 구체적인 항목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가 2.9, 정부 2.9, 국회 2.8, 사법부 3.5 등으로 나타남으로써 각 항목 평균보다 30~40% 정도나 낮았다.
이는 신행정수도 이전 결정 백지화에 따른 실망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전·충청 지역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신뢰개선 노력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은 대통령9이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전체 평균 6.9, 대통령 7.5)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했으나 신뢰도는 5.1에 그쳤다. 대통령이라는 직위를 놓고 이 같은 응답이 나왔을 수도 있고, 노무현 개인에 대해 대답했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대통령은 가장 큰 영향력을 갖는 만큼 가장 높은 수준의 신뢰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이다. 노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 측면에서 보면, 지난 대선 때의 지지후보와 지지정당에 따라 신뢰도 차이는 1점 이상으로 격차가 벌어진다.
노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에 따라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반면, 영향력을 같은 기준으로 분석하면 신뢰도에서와 같은 큰 폭의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다.
결국 영향력에 있어서는 직위를, 신뢰도에 있어서는 개인을 고려한 응답이 많았다는 유추가 가능하다. 일종의 정치적 선호가 신뢰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신뢰는 바람직한 가치다.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가치가 개응?차원의 기준에 커다란 차이를 나타낸다면 우리 사회의 신뢰 구조는 불안정하다고 할 것이다.
개인에 대한 선호에 따라 신뢰는 변화할 수 있으며 신뢰 구조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뢰가치만을 놓고 본다면 개인 노무현 보다는 대통령 직책을 더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종의 시스템화 혹은 안정화가 요구된다는 의미다.
정원칠(EAI 여론조사센터 부소장)
■ "경제 낙관" 응답자/ 국가 신뢰度 높아
"5년 후 당신의 경제상태를 어떻게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좋아질 것’이라는 응답이 42.5%로 ‘나빠질 것’이라는 28.8%보다 13.7%나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국민들은 경제 전망과 국가·기관 신뢰도를 통해 일정한 유사성을 보여준다. 5년 후 경제상황을 낙관한 국민의 신뢰도가 비관적인 응답자들의 신뢰도보다 높은 것이다. 신뢰는 기대도 동반한다. 이는 곧 기대가 무너지면 신뢰도 무너진다는 의미다. 불신사회에서는 발전을 기약할 수 없다. 올해 정부와 정치권이 경제 살리기에 진력해야 하는 이유다.
■ 신뢰수준의 변화/ 대통령·군대 순위 하락 대기업은 3년새 ‘껑충’
한국사회에서 신뢰 수준은 지난 수년간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사회 신뢰 수준의 변화를 1998년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조사 자료1와 2001년 한림과학원 조사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살펴보았다.
먼저 ‘한국사회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를 0점(불신)에서 10점(신뢰)까지 물은 결과 평균 5.51로 신뢰와 불신의 중간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1년에 동일한 질문에 대한 응답평균은 4.13이었다. 지난 3년 동안 사회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다소 신뢰 방향으로 바뀐 것을 의미한다.
한국사회의 여러 기관이나 집단에 대해 국민의 신뢰 수준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순위를 통해 비교해보면, 우선 98년에서 최근까지 시민단체가 가장 많은 신뢰를 받고, 국회와 정당이 가장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경향이 변함없이 지속되럭?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98년과 2001년 사이에는 신뢰 순위에 큰 변동이 없다. 그러나 2001년과 2004년 12월 사이에는 상당한 변화가 보인다. 민간부문에 속한 기관, 집단이 보다 많은 신뢰를 받고, 공공부문이 불신 받는 차이가 더욱 뚜렷해 졌다. 민간 부문에선 언론이, 공공부문에선 국회의 신뢰 순위가 가장 낮다.
눈에 띄는 것은 대기업에 대한 신뢰 증가다. 98년과 2001년 조사에서 대기업은 국회 다음으로 불신 정도가 높았으나 2004년에는 시민단체와 대학교에 이어 세 번째로 신뢰를 높게 받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는 어려운 상황에서 경제에 대한 기여도를 인정한 결과다. 대기업의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을 응适ㅗ歐? 보다는 기술혁신과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측면이 더욱 부각된 것이다. 동시에 공공부문에 대한 신뢰가 감소한데 따른 반작용으로 볼 수도 있다.
군대는 98년과 2001년 세 번째 신뢰집단에서 지난 해에는 여섯 번째로 크게 밀렸다. 대통령도 2001년에서 2004년 사이에 신뢰 순위가 여섯 번째에서 여덟 번째로 떨어졌다. 사법부와 정부도 신뢰 순위가 한단계씩 떨어졌다. 군에 대한 신뢰도 급락은 여러 차례의 병역 비리, 군 인사비리 의혹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군대의 안보역량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대통령에 대한 신뢰 순위 %C저하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의 지속적 하락과 무관하지 않다. 정부의 신뢰 순위 하락 역시 같은 맥락에서 정책적 난맥상과 경기침체, 사회적 갈등 심화 등에 대한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사법부의 신뢰 순위 하락은 지난 해 두 차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을 거치면서 사법부의 중립성이 위협 받은 결과로 해석된다.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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