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비겁한 변명입니다’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냈던 ‘실미도’의 시나리오 작가는 김희재(36)씨였다.
‘남자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영화에 여자 작가라니?’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들도 많겠지만, 김씨는 선이 굵은 글들을 써내는데는 녹록치 않은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10년간 만화 스토리 작가 생활을 하며 이현세씨의 ‘엔젤딕’ 야설록씨의 ‘남벌’ 등에 참여했다. ‘하드 보일드’와 ‘느와르’풍 내용을 담고 있는 이들 만화를 조금이C라도 안다면, 김씨의 영화작업에 이내 고개를 끄덕일만하다.
멜로 ‘국화꽃 향기’와 ‘누구나 비밀은 있다’의 시나리오를 담당하기도 했지만, 김씨의 능력이 발휘되는 곳은 역시나 거친 내용의 남성영화. 27일 개봉한 ‘공공의 적2’도 그의 몫이었다. ‘나쁜 놈 인권보호 하다가 내 사람 피 쏟는 꼴, 난 안봅니다’ ‘이런 놈 수사 못한다면, 검사질도 계속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쪽 팔려서요’ 등의 귀에 착착 붙는 대사 역시 그답다. 주인공 강철중이 검사 윤리강령 등을 들먹이는 대사를 만들기 위해, 딸과 함께 마침표와 쉼표 등을 빼고 실제 글자수가 몇자인지 일일이 세%B어보기도 했다고. "처음 제안을 받고 도망도 많이 다녔어요. 속편의 중압감을 견디기 힘들더군요. 그나마 1편과 다른 영화가 나와 다행이에요."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김씨의 전공은 영화연출. "졸업하고 바로 결혼하다 보니 원래 전공을 살리기는 힘들었다"고 말한다. 집안일에 크게 방해되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만화 스토리작가였다고. 그가 시나리오 작가로 변신한 것은 2002년. 같은 과 출신인 이종혁 감독의 제의에 따라 조승우 지진희가 주연한 스릴러 ‘H’로 신고식을 치렀다.
만화와 영화 중 더 보람을 느끼는 작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사회적 영향력쩜? 큰 영화에 더 마음이 기운다"며 "특히 ‘실미도’가 유족과 북파공작원 보상문제로 이어져 기뻤다"고 말한다. "남성영화든 여성영화든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좋은 시나리오가 나온다"는 김씨는 그래도 "남성물은 늘 해오던 것이라 정신적으로는 편하다"고 말한다.
‘공공의 적2’가 이제 막 개봉해서 좀 쉴 만도 한데, 그는 강우석 감독의 차기작 ‘택스’를 위해 자료수집중이다. 세금 낼 능력이 있으면서도 도망 다니는 고액 체납자와 세금 징수원의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멜로도 하고 싶지만 일단은 지금 하고있는 분야에 충실하려 합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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