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의 휴먼 다큐멘터리 소재를 영화로 만드는 건 위험하다. 십중팔구 상투형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정윤철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자 조승우와 김미숙이 주연한 '말아톤'은 자폐아가 마라톤을 완주하고 철인 5종 경기 기록을 세운 실화에서 출발했다. 대충 이 정도만 얘기해도 지레 짐작할 수 있는 소재이며, 그만큼 관객의 시선을 잡아채는 이 영화만의 내공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정윤철의 연출은 이 만만치 않은 소재를 능숙하게 다룬다. 능숙하게 다뤘다는 것은 칭%찬이자 욕이다. 너무 깊게 들어가지도 너무 얕게 들어가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대중은 장애인을 다룬 영화를 보기 위해 선뜻 호주머니를 열지 않는다. 현실의 그늘을 보는 것은 불편하기 때문이다. 대신, 이 영화는 그걸 모성과 우정이라는 보편적인 코드로 버무려 사근사근 익숙치 않은 이야기로 우리를 안내한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일 것이다. 정윤철은 최근 한국영화계가 배출한 매우 드문 테크니션이다. 특히, 조승우가 연기하는 주인공 윤초원이 달리기를 하는 대목의 묘사에선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감각, 달린다는 것이 왜 살아있음을 응歐嚮珥? 행위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달리는 가운데 전해지는 길가의 냄새, 옆으로 뻗은 팔에 와 닿는 풀의 감촉, 벌떡거리는 심장의 박동이 공감각적 울림으로 길게 메아리 치는 것이다.
자폐아를 연기하는 조승우의 매력과 어머니 역의 김미숙이 담는 슬픔이 충돌하면서 펼쳐지는 기본 얼개에 손정욱이 분한 코치의 에피소드가 섞이면서 영화는 꽤 아기자기한 재미와 감동을 한꺼번에 겨냥한다. 그러나 보편적인 감동의 틀로 수렴되는 인간 승리담이 어쩔 수 없이 봉착하는 함정을 피해가지는 못한다. 갈등과 고통의 극복이라는 주제는 어쩔 수 없이 드라마의 구도로 포섭?%C? 흔적을 드러내고 거꾸로 이는, 자폐로 우리가 규정하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낯선 시각을 완전히 거둬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특히 영화 말미에 윤초원으로 분한 조승우가 보여주는 해맑은 미소는 대단한 매력으로 다가오지만, 결국 이것이 전도유망한 스타가 열연한 감동 스토리라는 걸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감독 정윤철은 좀 더 도전적으로 세상의 통념을 깨는 데는 이르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소재를 착취하지는 않았다. ‘말아톤’은 어쨌든 준수한 대중영화다. 편안한 우리 삶의 경계를 살짝 한 발자국 벗어나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에 잠깐 입회시킨다.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2’는 처음부터 끝까지 노골적으로 정의의 판타지를 설복시킨다. 장장 2시간 20여분에 이르는 상영시간 동안 정의감으로 뭉친 강철중 검사의 활약상을 보며 끈질기게 샅바싸움을 벌이는 씨름선수의 투지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세상에는 선한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서 세상은 그나마 지탱되고 있는 것이라는 옛날 영화식 감동을 느끼게 한다.
성긴 마디를 감추지 못하는 투박한 연출호흡으로 뚝심있게 밀고가는 강우석의 연출은 좌절할수록 더 세게 반동을 받아 앞으로 튕겨나가는 강철중의 매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미 1편에서 전염력을 입증한 이 캐릭터의 매력은 여전히 흡입력이 있다. 이 시리즈가 세상의 변화를 반영하며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란다. 2편은 양비론의 냉소주의에 익숙한 우리에게 순진하게 대드는 묘한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끝으로, 적당히 우리의 비위를 맞춰주는 상업대중영화의 것과는 다른 감동을 원하는 분들에게 ‘텐 미니츠 첼로’를 권해드린다. 거장 8명의 10분짜리 단편을 묶은 이 옴니버스 영화는 관객을 자극하는 것보다 생각하게 만드는 예술이 왜 더 훌륭한 작업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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