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의 일부였던 경기여고 터에 미 대사관을 신축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빚어졌던 한미 간의 해묵은 논란이 일단락됐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미국측이 대사관 건물과 직원숙소를 지으려 했던 경기여고 터 및 공사관저 터 7,800평을 내놓는 대신 우리가 용산의 캠프 코이너 내 2만4,000평을 제공키로 한미 간 합의가 이뤄졌다. 미국은 새 부지에 12층 높이의 대사관과 부대사관저, 175가구의 직원용 숙소를 짓고 행정 및 생활지원 시설 등을 갖춰 외교복합단지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거센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켰던 미 대사관 신축 부지 문제 타결은 의미가 적지 않다. 우선 종합적 검토 없는 덜컥 행정으로 외국의 공관이 들어설 뻔했던 덕수궁 터와 구한말 유적 터를 지켜낸 것은 평가할 만하다. 미국측은 대사관의 상징성과 업무 편리를 감안해 4대문 안에 위치해야 하며 이미 건물 설계비로 수천만달러를 들였다는 점 등을 들어 막판까지도 덕수궁 터를 고집했다고 한다. 당초 협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공사관 터를 돌려 받게 된 것도 성과다. 이 곳은 구한말 고종이 아관파천 시에 이용했던 오솔길 등 중요한 문화 유적이 있다. 현재 미 대사관저로 쓰이고 있는 터까지 돌려받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미국측이 구한말부터 사용해 온 이 곳까지 내놓게 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물론 아쉬움도 남는다. 귀중한 문화유적 터를 지켜내기 위한 비용이겠으나 그 3배에 달하는 땅을 제공한 것은 지나친 양보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면밀한 감정 평가 등을 통해 대체 부지로 제공되는 땅의 미래 가치를 따져 신중한 협상을 했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수도의 한 복판에 2만4,000평에 달하는 특정국가의 외교복합단지가 들어선다는 것도 찜찜한 뒷맛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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