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 골드스타인(70) 할아버지는 작년까지만 해도 미국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노숙자였다. 한때 재산이 1,100만 달러(약 110억 원)나 되는 ‘미국 포르노 제국의 대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2년 전 재산을 다 날리고 센트럴 파크 벤치를 전전하는 노숙자가 됐다.
瀏??최근 다시 일어섰다. 70객이 택한 제2의 인생은 빵집 체인 ‘뉴욕시티 베이글’의 점원. 주 5일 근무에 시급은 10달러. 천상에서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또 일어선 그를 25일 로이터 통신 기자가 찾았다.
그가 대뜸 말했다. "항상 여자보다는 먹을 것을 더 좋아했어요. 음식이 내 첫사랑이지. 빵 장사는 포르노보다 역동적인 사업이오. 아직도 날 포르노 제작자로 여기는 사람이 바보지." 듣고 있던 지배인은 "앨 할아버지 덕에 판매가 늘었다"고 추켜세웠다. 작년 말 노숙 생활을 청산하고 처음 취직한 식당에서는 졸다가 쫓겨났다.
그의 인생역정은 한 편의 드라마다. 1968년 포르노 잡지 ‘스크류’를 시작으로 유명한 X 등급 나이트 쇼를 제작한 밀키웨이 프로덕션을 인수하는 등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사나이였다. 스크류는 매주 14만 부씩이나 팔려나갔고 빨간색 광고로 돈을 아예 쓸어 담았다. 하지만 가공할 경쟁자가 나타났다. 인터넷이었다. 사이버공간에서 바이러스처럼 번지는 무료 포르노 동영상에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포르노 잡지는 공룡과 같습니다. 이젠 멸종한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결국 작년에 마지막 남은 250만 달러와 호화 별장, 고급 주택까지 빚을 갚기 위해 처분했다. 그러자 찾아온 것은 염량세태였다. 함께 포르노를 하던 동료들은 등을 돌렸고, 하버드대를 나와 뉴욕의 법률회사에 근무하는 아들까지 문전박대했다. "엉망진창이 됐죠. 노숙자로 전락하니까 친구의 98%가 떠나버리더구먼. 그래도 난 살아 남았소." 공원과 노숙자 쉼터를 전전하?%? 그는 남은 2% 동료들의 도움으로 작년 말 작은 아파트를 마련했다. 28세의 다섯번째 부인 크리스틴도 맞았다. 고급 와인에 쿠바산 시가, 호화 파티를 즐기던 취미는 퇴근 후 히스토리 채널을 보는 것으로 바뀌었다.
"어제나 내일을 사는 게 아니잖아요? 난 그저 오늘을 삽니다. 생각이 바뀌면 삶도 달라져요." 그는 사진기자 앞에서 익살맞은 포즈를 취할 만큼 낙천적이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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