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봤을 때부터 맘에 쏙 들었어요. 운동 잘 하게 생겼잖아요. 제가 관상을 좀 보는데 어떻게든 스카우트해서 간판스타로 만들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지난해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80kg 이상급에서 전광석화 같은 뒤후려차기로 금메달을 목에 건 문대성(28). 그는 이날의 영광을 대학시절 은사인 김우규(58) 교수에게 돌린다. 올림픽 이후 K-1 등 세계격투기, 연예계 등으로부터 거액의 스카우트제의를 받았지만 모두 뿌리치고 모교인 동아대 감독으로 향한 것도 " 후배들을 잘 가르쳐 나를 %길러준 모교와 은사에 보답하겠다" 는 뜻에서다.
지난 주말 동아대 체육관에서 자리를 함께 한 두 사람은 오랜 시간을 함께 했으면서도 여전히 스승과 제자로서 존경과 아끼는 마음이 가득 차 있는 모습 그대로다. 두 사람은 1994년 여름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처음 봤다. 리라공고(현 리라컴퓨터고) 3년생으로 중고연맹전에 출전한 문대성을 지도교사인 최종국 코치가 소개한 것.
"제가 먼저 말을 건넸습니다. 보자마자 동아대로 와달라고 얘기했지요." "네, 알겠습니다." 대선배가 마냥 어렵기만 한 문대성은 짤막한 대답만을 던질 수 있었다. "김 교수님 주위에 많은 분들이 함눠? 계신 것을 보고 대단하신 분이라고 직감했습니다. 가서 배우면 뭔가 될 것이라는 느낌도 들었어요."
입학 후 첫 성적표는 초라했다. 신입생시절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가 한마디로 죽을 쒔다. "교수님이 ‘이런 식으로 하려면 운동 그만두라’며 따끔하게 혼을 내곤 인사도 받지 않고 아예 쳐다보지도 않으시는 거에요." "동계훈련도 마치고 잘 할 줄 알았는데 기대에 못 미쳐 답답했지요." 김 교수는 "본인이 극복하는 과정을 지켜 보면서 처음에 봤던 총명한 눈빛과 강인함이 역시 거짓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대학시절 문대성의 또 다른 적수는 가난이었다. 어려운 가정혈幌諮? 인천 집에 전화도 못했는데 전화를 할 때면 어머니가 용돈을 보내주기 위해 이웃 집에 돈을 빌리러 다니셨기 때문이다. 이를 알게 된 김 교수는 한달마다 20만원씩을 건네주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남들 몰래 보약까지 지어줬다. "운동을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코치의 역할이지요. 제자이기 이전에 동생, 아주 친한 후배와 다름없지요." "졸업을 하고 나니까 그게 사랑이었구나 하고 느꼈어요. 제가 큰 빚을 진거지요" "올림픽 영웅이 우리 동아대에 와준 게 고맙습니다. 부른다고 다 오는 게 아닌데…이미 수백 배로 다 갚은 겁니다." 김 교수는 "문 감독이 앞으로 ?%8퓔▤? 체육 지도자로 성장해 나가는 걸 지켜보고 싶다"고 말했다.
문대성이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 환호를 미루고 패자를 꼭 껴안아 위로한 모습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아픈 맘을 달래 주는 것이 당연하지요." ‘태권도의 핵심은 도(道)며 경기장에서나 사회생활에서도 항시 예의범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
요즘 김교수는 걱정이 많다. 태권도 관련 행사다 모임이다 해서 문대성이 불려 다니는데 여기저기서 워낙 술을 많이 권하기 때문. "그래도 본인이 잘 가려서 조절합니다. 술 많이 먹이지 마세요."
부산=박원식기자 parky@hk.co.kr
●문대성은
키 190cm, 체중 92kg의 태권도 중량급 스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남자 80㎏ 이상급 금메달을 수상했다. 99년 동아대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용인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국민대에서 체육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김우규는
부산 출신으로 국내에 몇 안 되는 태권도 9단 단증을 보유한 태권도 ‘원로’. 1989년 세계맑굴仄풔潤? 국가대표 코치, 98, 2004년 세계대학선수권 남자감독을 역임했다. 20여년간 동아대 감독으로 재직하다 지난해 3월 동아대 교수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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