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말부터 정치권은 본격적인 차기 대선준비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정부가 남은 3년을 잘 관리하고 국정을 이끌어나가야 할 시점인데, 정치권에서 대선을 놓고 득실을 따지며 정쟁을 반복한다면 나라운명이 계속 곤두박질 칠 것은 뻔하다. 당선에 눈이 멀면 권력투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이다. 국민들도 정치권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평소에는 멀쩡하던 사람들도 대선국면만 되면 지역주의의 병이 도지고 상대를 불구대천의 원수%8수처럼 낙인을 찍어 죽기살기로 싸운다. 우리는 이런 현상에 대해 한숨도 내쉬고 실망도 하고 온갖 비난도 하지만 정작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고치려고 노력해본 적은 드물다.
대선을 놓고 왜 국민들이 죽기살기식으로 싸울까. 그 원인을 정치인들의 선동이나 여론조작, 또는 정치문화의 천박성에서 찾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나라 대통령제의 시스템과 운영방식이라는 구조적 모순에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는 유효투표의 과반수를 얻지 못한다 해도 단 한 표라도 더 많이 얻는 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것은 국민 다수의 지지에 기초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주?%퓻〉? 합치하지 않고 민주주의와도 배치된다.
한 표차라도 이기기만 하면 그는 대통령직을 차지하고 모든 권력을 독점한 채 자기마음대로 국가를 운영한다. 인사나 이권, 지역지원이나 국책사업 등에서 자기 사람들만 챙기고 자기를 지지하지 않은 대다수 국민을 적대시 한다. 이를 승자독식(勝者獨食)이라고 한다. 민주적 정당성도 확보하지 못한 세력이 간발의 차이로 이겼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이익을 독점하고, 권력을 휘둘러 경제나 개인 사업이나 직장에서의 승진 출세에까지 무차별적으로 관여하고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민들은 대선에서 죽기살기로 싸우는 것이다. 나라문제이기 이전에 자기 삶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은 미국에서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 처음 고안된 대통령제는 이를 수입한 나라마다 거의 대부분 실패하고 미국에서조차 심각한 병리적인 증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대통령제와 상대다수주의에 따른 선거방식, 그리고 승자독식의 국정운영에 대해 강한 비판이 제기된다. 그 대안으로 내각책임제로의 개헌이나 대통령제와 내각책임제를 혼합한 유럽형 이원정부제로의 개헌이 제시되고 있다.
대통령제는 그 선거과정%B에서부터 한판승부로 모든 것을 잃느냐 거머쥐느냐 하는 도박성이 강하고, 대통령 1인의 판단에 의해 국가운명이 좌우될 위험성이 항상 존재한다. 말하자면 위험도(risk)가 너무 높은 시스템인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개선한다고 하여 4년 중임제로 고치자는 것도 매우 피상적인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구조적인 문제, 국정운영상의 문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4년 중임제로 고쳐도 여전히 대선은 국민에게 사생결단의 싸움판이 될 것이고, 국정은 그만큼 심각하게 왜곡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개헌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권력구조뿐 아니라 기본권보장에서도 손질해야 할 부분이 많다. 결국 개헌은 현단계 우리의 중대한 과제이다. 다만, 개헌논의가 정략적 계산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국회산하에 범국민적인 중립적 헌법연구기구를 설치해 2년 정도 전문가들이 조사·연구·논의하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그 결과가 다음 대선에 편파적인 영향을 준다면 차차차기 정부부터 시행하더라도 헌법개정논의는 가능한 한 빨리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느날 정치권에서 기습적으로 개헌논의를 띄워올려 놓고 서로 싸우는 것은 또 사회분열과 국력손상만 불러올 것이기에 미리 해두는 말이다.
정종섭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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