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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그레이드 IT 코리아] (5) 기술자를 박대하는 IT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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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그레이드 IT 코리아] (5) 기술자를 박대하는 IT강국

입력
2005.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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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야 언젠가 풀리겠죠. 하지만 저 빈 자리들을 볼 때마다 막막합니다. 불황도 지겹지만 이젠 사람이 문제라 더 절망적입니다." 한 때 코스닥 황제주로 벤처 붐을 주도했던 인터넷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A사.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에 독자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공급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 받는 유망 벤처기업이다. 하지만 화려한 명성과 달리 서울 마포에 있는 본사 사무실은 근무시간에도 한산하기만 했다. 벤처 붐이 꺼지면서 핵심 개발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 인재난 = 불과 2년 전만 해도 서울대와 연세대, KAIST 등 명문대 출신 개발자들만 70資?넘었다. 현재 남은 개발인력은 모두 합해봐야 전성기의 30%도 못 미치는 20여명이다. 대부분 대기업, 대학, 개인사업 등으로 진로를 바꿔 이직을 하는 통에 사무실 한쪽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실로 사용되던 50여 평의 공간은 사무집기 하나 없는 ‘빈 집’이 돼버렸다. 그런데도 건물주와 임대 계약기간이 아직 안 끝나 매물로 내놓지도 못한 채 꼬박꼬박 월세만 날리고 있다. "자동차 회사에서 설계자와 엔진 기술자들이 죄다 빠져나간 셈이죠. 남은 인력으로 차야 조립한다고 칩시다. 신차는 누가 개발합니까." 이 회사 기술개발담당 부사장 K씨의 하소연이다.

정보기술(IT) 벤처 거품의 붕괴로 위기를 겪었던 소프트웨어 업계가 또 다시 고사위기에 몰려있다. 이번에는 ‘사람의 위기’다. 소프트웨어 업체마다 일할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의 주역인 프로그래머, 기술 인력의 공백이 특히 심각하다. 한때 ‘한국의 빌게이츠’를 꿈꾸며 벤처에 투신한 과학 두뇌들은 편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 ‘탈(脫) 벤처’를 했고, 빈 자리를 메울 신규 인력의 유입은 거의 중단된 상태다. 퇴로는 활짝 열렸는데 입구는 막혀 있는 형국이다. IT산업의 기초이자 토대인 소프트웨어의 인력 공백은 ‘IT 강국’ 대한민국의 미래에 짙은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 취업난 = 개발 인력난에는 음지와 양지가 따로 없다. 게임이나 모바일 등 최근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는 분야의 ‘잘 나가는’ 업체들도 개발자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구직난 속에 구인난을 호소하는 기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채용 공고를 보고 찾아오는 구직자들은 많지만 막상 ‘쓸만한’ 기술자가 없다는 게 무엇보다 큰 문제다. 채용인원 대비 50대 1, 100대 1 따위의 경쟁률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수백명을 인터뷰하고도 한 명도 뽑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무선인터넷 브라우저 개발업체인 인프라웨어. SK텔레콤과 LG텔레콤 등 국내 굴지의 이동통신사에 인터넷 브라우저를 독점 공급하는 이 업체는 새해 최우선 목표가 ‘개발 인력 충원’이다. 지난해 말까지 개발 인력 110명을 새로 채용할 예정이었으나 아직 목표의 절반도 못 채웠다. 이 회사 기술담당 임원(CTO) 곽민철(29)씨는 "프로그래머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며 "얼마 안 되는 기존 연구인력까지 품질관리 등 현업에 모두 배치한 터라 원천기술 개발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국내 무선인터넷 솔루션 분야의 선두주자이자 코스닥 등록기업인 D사 역시 모바일 게임사업을 위해 6개월여 전부터 개발자를 공모 중이지만 헛물만 켜고 있다. 사람을 뽑지 못해 아직 게임개발팀조차 구성하지 못했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선 "80년대 학번 이후 프로그래머는 없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서울 명문대 전산학과를 나온 D사의 개발담당 임원 김모씨는 "모교 교수로부터 컴퓨터 관련 학과는 지방의 의대나 한의대는 물론, 약대와 수의대까지 한 바퀴 돌고도 성적이 모자라는 학생들이 모이는 비인기과로 전락했다는 얘길 들었다"며 양과 질 모든 면에서 급락한 인력난의 실상을 한탄했다. 그는 "요즘엔 일류대 출신 전공자라 해도 프로그래밍 수준이 턱없이 떨어져, 대학 간판만 보고 (개발자를) 뽑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인도나 러시아 등 외국 인력에 눈을 돌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상 및 비즈니스 프로세스관리(BPM) 솔루션 부문의 대표 벤처인 얼라이언스시스템은 몇 해 전부터 인도인 프로그래머들을 쓰고 있다. 지난해 말로 인도인 개발자 3명의 취업기간이 만료되자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외국인 근로자 채용 신청을 다시 해놓은 상태다. 이 회사 계세경(42) 기술연구소장은 "(인도인 기술자들은) 웬만한 한국 개발자들보다 프로그래밍 능력도 뛰어나고 성실하다"며 "원천기술 정보가 해외로 유출될 우려도 있지만 회사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 해결책 = 이 같은 인재난의 원인은 IT 시장의 침체와 중소 벤처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무시하는 복제문화 등 복합적이지만, 이공계 기술 인력에 대한 사회와 제도의 홀대가 가장 심각한 원인이다. 5~6년 이상 전문 지식을 쌓아 사회에 진출하지만 인문계열 전문직에 비해 보수도 적고, 기술 인력이라는 이유로 조직 내에서 고위직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도 적다. 이 때문에 약간의 경력만 쌓이면 연구실(개발)에서 벗어나 펜대를 잡는 ‘관리자’가 되려고 하는 ‘조로(早老) 현상’이 심각한 상황이다. 국내의 대표적인 보안솔루션 업체인 안철수연구소는 최근 개발인력의 공백을 막기 위해 7년 이상 경력자를 대상으로 평생 개발만 전담할 ‘전문연구원’을 뽑기 시작했다. 이 회사의 강은성(44) 전문부장은 "20년이든, 30년이든 흰머리 날릴 때까지 연구개발로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젊은이들이 없다"며 "소프트웨어 산업의 붕괴를 막으려면 인력 육성을 위한 제도적,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 툭하면 야근불구 박봉 "공학도 대우는 거의 박해 수준"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의 최성우(42·사진) 운영위원은 우수 정보기술(IT) 연구개발(R&D) 인력의 부족 현상의 이유를 제도와 사회적 풍토의 문제에서 찾는다. 그는 "죽도록 고생해서 석사 박사가 되어 봐야 기업에 들어가면 고액 연봉은 고사하고 ‘잠재적 범죄인’이나 다름없는 것이 오늘날 한국 이공계 인재가 처한 현실"이라며 "내 자녀에게도 차마 기술자가 되라는 말은 하지 못하겠다"고 성토했다.

각종 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회가 이공계 기술인들에게 가하는 차별은 제도적, 조직적 수준에 있어 차라리 ‘박해’에 가깝다. 일반 대기업 연구소의 신입 연구원 연봉은 2,000만원대 초반으로, 취업 전문업체 리쿠르트가 발표하는 2004년 대기업 대졸 신입사원 평균 연봉 (2,472만원)보다 낮다. 또 평균 근무시간은 주당 66시간 내외로 하루 12시간 꼴이고, 프로젝트에 맞춰 일하기 때문에 근무 패턴마저 불규칙하다. 수치로 볼 때 여느 직업군 보다 심각한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고 있지만 ‘연구직’이라는 이유로 노조 설립이나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위 잘 나가는 IT 분야의 R&D 인력은 기술 유출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강력한 억압과 감시에 시달린다. 최 위원은 "정부의 기업기술 보호 정책은 반도체, 휴대폰 등의 분야에 종사하는 기술자들에게 ‘전직 제한’이라는 부당한 족쇄를 물려 대기업의 노예로 전락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정부 여당이 입법을 추진 중인 산업기술보안법은 국가정보원이 참여하는 ‘기술보호위원회’를 통해 정부출연연구소와 기업연구소, 심지어는 대학의 연구개발 인력까지 기술 유출 통제를 위한 엄격한 ‘관리’를 받도록 돼있다. 이 법은 기술 유출 사건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 피해액의 10배에 이르는 무거운 배상 책임을 규정하고 있으며, 심지어 미수범이나 ‘예비 음모’의 경우도 처벌하도록 돼있어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최 위원은 "이 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시행되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인은 모두 잠재적 범죄인으로 취급 받으며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공계 인력난을 해소한답시고 아무리 지원책을 강화해 봐야 이 같은 ‘제도적 박대’가 해소되지 않으면 누구도 공학도가 되려 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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