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감시인가, 독립성 훼손인가. KBS의 예산편성을 정부투자기관의 예산편성지침에 따르도록 한 방송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KBS 노조는 25일 비상대책위원회로 조직을 전환하고, 파업도 불사하는 강경 투쟁을 선언했다. 한국방송협회도 이날 성명을 내고 "공영방송을 관치방송화 하려는 시도"라며 법안 철회를 요구했다.
◆ 개정안 내용과 배경
방송위원회가 17일 입법 예고한 개정안은 KBS 이익잉여금의 국고 납입, 이사장의 상임직 전환, 일정 직급 이상 공무원 신분 적용 등을 담고 있다. 최대 논란거리는 예산편성 문제. 현재는 이사회 의결만 거치면 되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부의 일정한 통제를 받게 된다.
이 같은 개정안은 지난해 5월 감사원이 발표한 감사결과를 반영한 것. 감사원은 "KBS는 전액 정부출자기관이고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데 외부감독이 전혀 없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며 이사회 권한 강화, 지역국 구조조정 등을 권고했다.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이 KBS의 ‘정치적 편향성’을 연일 성토하던 시점에 나온 감사결과는 곧바로 정치쟁점화 했고, 수개월의 공방 끝에 결국 방송위가 방송법 개정안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양휘부 방송위원은 "KBS는 사회적 요구에 걸맞은 재정과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취지를 밝힌 뒤 "예산편성 조항의 경우 제작비를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 정치적 독립성 훼손을 막았다"고 설명했다.
◆ KBS 내부갈등 번지나
KBS는 개정안이 발표되자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KBS는 "개정안의 내용은 사실상 예산의 사전 심의를 의미한다"면서 "제작비를 제외한다지만 인건비 등이 통제를 받게 되면 다큐멘터리 등 대형 기획은 불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또 BBC NHK 등의 사례를 들어 국고보조금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이익잉여금을 국고에 납입토록 한 것도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KBS 노조도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진종철 노조위원장은 "개정안은 1987년 방송민주화 운동의 성과물로 ‘정부투자관리기본법’ 적용대상에서 벗어났던 KBS를 예전으로 돌려놓은 악법"이라고 주장했다. 노조의 반발에는 이런 ‘대의명분’ 외에 인건비 등이 정부의 통제를 받게 되면 임금협상 등에서 제약을 받을 수 있는 현실적 문제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연주 사장 체제에 대한 강력한 견제’를 내세우며 1월 출범한 새 노조는 이번 사태의 한 원인으로 경영진의 안일한 대응을 꼽아 사내 갈등으로 번지고 있는 양상이다.
KBS는 2월12일까지인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 제출 마감시한을 포함해 향후 입법 일정에서 KBS 입장을 최대한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유현순 대외정책팀장은 "개정안 입법예고는 열흘에 불과한 부처회의를 거쳐 당정협의도 없이 졸속으로 이뤄졌다"면서 "입법 일정 단계별로 적절한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 해결책은 무엇인가
방송학자 등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이나 비용 절감 등 노력이 여전히 부족한 KBS의 개혁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개정안에 담긴 방법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 의견을 보이고 있다. 최근 NHK가 자민당의 압력으로 군 위안부 프로그램을 축소 방송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는 데서 보듯이 정부가 KBS의 예산에 관여하는 것은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김승수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독일처럼 방송학자 회계사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방송재정조정위원회’를 설치, KBS의 예산편성과 운영, 감독을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강형철 숙명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도 "현상만 놓고 보면 KBS는 방만한 경영, 미흡한 구조조정 등 문제점이 많지만 그렇다고 국회나 감사원 같은 국가기관에 견제기능을 맡기만 공영방송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다"면서 "시민단체나 언론 등 사회적 견제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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