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계속되듯 책을 덮을 수는 없지요. 아직 암울한 터널엔 빛이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누렇게 바랜 책장을 넘기노라면 빛이, 희미한 빛이 느껴져요."
쾅 하는 포탄 소리와 따따따따 하는 총소리가 난무하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도 책방은 있다. 책방 ‘이크라아(독서라는 뜻의 아랍어)’ 주인인 모하메드 압바스(41·오른쪽)씨는 24일 찾아온 AP 통신 기자에게 작금의 정국에 대해 이야기하다 "책방은 희망을 읽는 곳"이라고 자랑했다.
좁은 공간에는 서가는 물론 통로마다 먼지 낀 책이 가득 쌓여 있다. 손님 몇 명만 책을 들어도 꽉 찬다. 바깥 세상은 저항과 진압과 테러로 전쟁터이지만 서점 안은 평온하다. 도서관도 다 무너진 도시에 이크라아는 평화와 지식을 갈망하는 이들의 안식처다.
전쟁 때문에 책 살 돈이 없는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빌려주기도 한다. 1주일 대여료는 한국 돈으로 약 200원. 덕분에 이 책방은 지성의 메카가 됐다.
25년째인 이 서점이 새삼 서방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이라크 총선(30일)이 며칠 안 남았기 때문이다. 각국 기자들이 이라크의 여론을 듣기 위해 이 서점으로 몰려온다. 이곳엔 고전과 전문서적에서 지혜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드나들고 선거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난한 학생들은 오로지 책을 읽을 요량으로 멀리 시리아 국경이나 여기서 남쪽으로 90㎞나 떨어진 힐라에서 와요. 검문이 지겹도록 계속되고 연료 부족으로 택시비가 비싸졌기 때문에 독서를 위한 그들의 노력은 정말 대단한 것이지요. 지금 학생들은 ‘잃어버린 세대’입니다. 그들도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로 된 셰익스피어, 헤밍웨이 같은 고전을 읽을 권리가 있습니다."
서점을 채운 책의 대부분은 미군이 버린 것들이다. 청소원들은 미군이 쓰레기통에 버린 책을 박스에 담아 이곳에 넘긴다. 압바스씨는 꿈이 많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하잖아요. 우린 수만 명을 잃었어요. 이제 다른 사람들처럼 살고 싶어요. 여유롭게 책 읽는 분위기도 널리 퍼져야지요. 이번 총선이 그 시작이기를 바랍니다."
옆에 있던 동업자 제이단(39)씨가 덧붙였다. "가게도 넓히고 압바스도 결혼을 해야지요!"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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